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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성][녤윙] 난반사亂反射 U

-그러게, 네게 그렇게까지 하지만 않았더라도.











그 후로도 무슨 말을 한참이나 들은 것 같았다. 그러나 그 중 어떤 말도 다니엘의 머릿속에는 남아 있지 않았다. 정신을 차렸을 때 그는 아버지가 돌아가 버린 텅 빈 집에 혼자 남겨져 있었다.

정신을 차렸을 때, 이미 시간은 한참이나 지나 있었다. 자신에게 남아 있는 모든 종류의 현실감각을 끌어 모아, 다니엘은 회사에 병가를 신청하는 이메일을 보냈다. 뭐가 어떻게 된 건지, 그저 얼떨떨하기만 했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이런 상태를 가지고 출근해 봐야 그 어떤 일도 제대로 할 수 없으리라는 사실이었다. 아니 그 이전에 다른 사람들 앞에 ‘강다니엘’이라는 자신의 껍질을 쓰고 나타날 자신이 없었다. 일단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그 사실부터 확신할 수 없었으므로.

그 후의 다니엘의 행보는, 의외로 매우 일상적이고 평범했다. 우선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었다. 밥 먹을 시간이 다소 지나, 끼니가 어중간하면 종종 시켜먹는 도시락 가게에 늘 먹던 도시락을 주문했다. 그러나 기껏 배달 온 도시락을 절반쯤 먹다가, 다니엘은 스스로가 별로 배가 고프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고 남은 음식을 전부 버렸다.

우선 좀 자야겠다고 다니엘은 생각했다. 늘 켜던 취침등조차 켜지 않고, 그는 침대로 기어들어가 이불을 머리 끝까지 뒤집어썼다. 의외로 마음이 후련했다. 일평생 매달려온, 답을 모르던 문제의 해답을 드디어 발견한 기분이었다. 그래서였을까. 다니엘은 생각보다 빨리, 아주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다니엘이 잠에서 깬 것은 그날 한밤중이었다.

타는 듯한 갈증이 밀려들어, 다니엘은 밖으로 나가 생수 한 병을 뜯어 반 병 정도를 마셨다.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팠다. 별로 즐겁지도 않은 술자리에 끌려가 실컷 술을 마시고 자다 깨어난 다음날 같은 기분이었다. 다니엘은 욕실로 가서 찬물에 세수를 했다. 거울 속에 비치는 얼굴은 그지없이 낯설어, 제 얼굴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순간 전에 없이 머리가 핑 내둘러, 다니엘은 잠시 타일 벽에 등을 기댔다.

뭐가, 이럴까.
사는 게, 뭐가, 이럴까.

태양이 우리의 주변을 돌고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태양의 주위를 돌고 있다. 지금 생각하면 우스울 만큼 쉽고 단순한 그 사실이, 당대엔 얼마나 큰 파란을 몰고 왔을 건가, 하고 다니엘은 생각했다. 이런 걸 코페르니쿠스적 전환, 이라고 하던가.

모두가 잘못됐다고 생각했다. 자신을 제외하고,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이 잘못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빈정거려도 되는 줄 알았다. 비아냥거려도 되는 줄 알았다. 함부로 잡아당기고, 화를 내고, 제 뜻대로, 제 맘대로 되지 않는다고 악을 쓰고 패악을 부려도 괜찮은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잘못된 것은, 자격이 없는 것은 자신 쪽이었다.

인생이 모조리 부정당한 기분이었다.

그러게, 네게 그렇게까지 하지만 않았더라도.

지훈이 아버지의 애인이었어도, 아버지의 친자였어도 마찬가지였다. 자신에게는 그들을 비난할 자격이 없었다. 비난 받아 마땅한 건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주제에 그룹의 후계자 자리를 차고앉은 자신이었다. 아버지의 아들 자리에 버티고 있는 자신이었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주제에, 끝도 없이 애정을 구걸하고 왜 나를 봐 주지 않느냐고 어리광을 부린 자신이었다.

물이 뚝뚝 떨어져 흐르는 얼굴을 닦을 생각도 하지 않고, 다니엘은 비틀거리며 침실로 돌아왔다. 그러나 그다지 좁지도 않은 방 안 어디에도 자신의 몸 하나 거천할 곳이 없었다. 다니엘은 침대 구석에 웅크린 채 세운 무릎 사이에 얼굴을 파묻었다.

이불 위에 아무렇게나 내던져 놓은 핸드폰에서 진동음이 울렸다. 우진이었다. 그러나 다니엘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그저 액정 위에 떠오른 이름을 한참동안이나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전화는 곧 끊어졌고, 언제나처럼 우진은 다시 전화를 하지는 않았다. 그 대신, 언제나처럼 이메일로 그가 감시 중인 지훈과 아버지의 동태를 적은 문서가 날아왔다.

지훈은 억지로 자리를 털고 일어난 모양이었다. 오늘은 학교도 갔고, 아르바이트도 하러 갔다고 했다. 그리고 그린 게이블스는, 인수 협상이 본격적으로 진행되어 조만간 문을 닫게 될 것이라는 말이 적혀 있었다.

순간, 전화해도 되느냐고 묻던 지훈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핸드폰을 집어 드는 손 끝이 떨렸다. 누군가에게 전화를 하느냐 마느냐 하는 순간이 이렇게나 고통스럽게 느껴진 적은, 30년 남짓한 짧은 인생을 통틀어도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랬다.

사과를 해야 했다. 그게 우선이었다. 그럴 자격도 안 되면서, 함부로 지훈을 따지고, 재단하고, 단죄하려 들었다. 아버지가 사 오는 피자를, 치킨을, 함부로 아버지를 아빠라고 부르는 그 모든 순간을 시샘했고 질투했다. 그것부터 사과해야 했다. 모든 건 그 다음이었다. 영문을 모르고 저질러버린 모든 말과 행동에 대해, 오만과 비웃음에 대해, 먼저 무릎을 꿇고 사과해야 했다.

그러나, 과연 그간의 일을 순순히 사과한 후, 그냥 거기서 조용히 입을 다물 수 있을까.

그 품이 그리웠다. 뭐가 어떤 건지도 모르면서 눈빛이 쓸쓸하다고, 그래서 마음이 아프다며 목을 끌어안던 그 손이, 그 팔이, 그 품이 그리웠다. 제대로 된 대꾸 한 마디 해 주지 않아도 자동차 조수석에 앉아 종알종알 떠들던 그 목소리가, 목덜미에 닿아오던 이마로 오르던 미열이, 앓던 입에서 나던 단내가 밴 숨결까지도.

그러나, 이제 와서.
이제 와서, 뭘 어쩌겠다고.

원래 인생이 그런 기다.


할머니가 자주 입에 올리던 그 말은, 필요 이상으로 진실이었다.

철 나자 망령 나고, 꽃 피자 서리 드는 그런 게.

미워하자 사랑하게 되어버렸고, 사랑하자 곁에 갈 수 없게 되어버렸다.

그 때 전화가 걸려왔다. 우진인가, 하고 생각했다. 어지간한 일로는 두 번 연달아 전화하는 일이 없는 우진이었다. 병가 냈다는 말을 듣고 많이 아픈가 싶어서 전화한 걸까. 그런 거라면 전화를 받아서, 짧게라도 그냥 몸이 좋지 않다고 말이라도 해줘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뜻밖에도, 액정에 떠오른 이름은 지훈이었다. 다니엘은 그만 기껏 들었던 핸드폰을 떨어뜨렸다. 파랗게 빛이 들어온 핸드폰의 액정은, 재촉이라도 하듯 어두운 방 안에서 더욱 밝게 빛났다.

받고 싶었다. 그러나 받고 싶지 않기도 했다. 목소리를 듣고 싶었다. 그러나 듣고 싶지 않기도 했다. 어디냐고, 뭘 하고 있냐고 묻고, 당장이라도 뛰쳐나가 얼굴을 보고 싶었다. 그러나 감히 그럴 엄두가 나지 않을 만큼 두렵기도 했다.

그러게, 네게 그렇게까지 하지만 않았더라도.

뭘 어떻게 하겠다는 생각도 없이, 다니엘은 떨어뜨린 핸드폰을 집어 귀에 댔다.


“왜.”


그 짤막한 한 마디를 하는 것만으로 목이 메었다. 가까스로 한 마디를 뱉어놓고, 다니엘은 흔들리는 낌새를 내지 않기 위해 피가 몰리도록 입술을 깨물었다.


[뭐해요?]


늦은 시간이었다. 이제야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전화를 한 모양이었다. 아픈 모습을 보였고, 그걸로 마음이라도 쓸까 봐서.


[바빠요?]
“설마.”


억지로 목소리를 깔았다. 목이 잠긴 것이 들킬까봐. 하루 종일 입을 다물고 아무와도 아무 말도 하지 않은 것을 들킬까봐. 혹시나 알아채고, 목소리가 왜 그렇게 힘이 없어요 라든가, 그 비슷한 말이라도 듣게 되면, 그냥 그 자리에 죄다 허물어져 버리고 말 것만 같아서.


“안 바쁠 거라고 생각하고 전화한 건가?”


어떤 게 평소 이 녀석을 대하는 말투였던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이 정도였던 것 같기도 하고, 이것보다 조금 더 퉁명스러웠던 것 같기도 하고.

이런 게 뭐가 좋아서, 전화해도 되느냐고, 그날 아침 차 안에서 너는 그렇게 물었던 걸까.


[나 실장님한테 전화한 거 맞구나.]


핸드폰 너머 웃는 소리에 가슴이 미어졌다.


[전화 좀 착하게 받아주면 안 돼요?]


순간, 지금 어디냐고 물을 뻔 했다. 지훈이 움직이는 반경이야 어디든 뻔한 것, 당장 그리로 달려 나가 뭐가 어떻게 됐다는 건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끌어안아 버리고 싶었다. 그 눈을 똑바로 볼 자신은 없어서, 그렇게 말없이 벅차게 껴안은 채로, 그 머리칼 사이에 입술을 파묻고, 미안하다고, 잘못했다고 말하고 싶었다.

그러면

나를
용서해 줄까.


“끊는다.”


달려나가는 생각을 붙들어 주저앉힌 것은, 여윈 심장 한 편에 남은 양심 같은 것이었다.


[아, 진짜. 비싸게 좀 굴지 말고.]
“끊어. 들어가 잠이나 자.”


가까스로 그 말을 꺼내 놓고, 다니엘은 전화를 끊었다. 아주 미끄러운 것이라도 만지듯, 핸드폰은 주르륵 미끄러져 손 아래로 떨어졌다. 이만하면 됐다고, 다니엘은 가만히 한숨을 내쉬었다. 설마, 무슨 일이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할 거였다.

방금 그 통화가 마지막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 건, 한참이나 지난 후였다.

자신이 없었다. 그렇게나 상처를 입히고, 실은 자신에게는 그럴 자격 같은 게 없었다는 사실을 어떻게 마주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아니, 그 이전에, 이미 저 스스로가 누구인지, 누구여야 하는지, 아무 것도 확신할 수가 없었다. 응당 그러리라 생각해 왔던 모든 것이 허망하게 허물어져 버린 지금은.

눈앞이 아려왔다. 그리고, 뭘 어떻게 해 볼 틈도 없이 눈물 비슷한 것이 한 방울, 뺨을 타고 흘렀다. 도대체, 왜, 눈물 같은 게 나는 걸까. 보는 사람이 없는데도 손등으로 뺨을 대충 훔쳤다. 그러나 훔치면 훔칠수록 눈물은 점점 더 짙고 진하게 뺨을 적셨다. 미처 닦아내지 못한 눈물은 턱 아래 방울져, 웅크린 무릎 위로 한 방울씩 떨어졌다.

다니엘은 자신이 지금 혹독한 벌을 받고 있음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가질 수 없는 것을 탐낸 것에 대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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