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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성][녤윙] 난반사亂反射 M

-그럼, 남이네.











양평 별장은, 일 년 중 사람이 드는 날이 일주일 남짓 될까 말까 하는 곳이었다. 집 앞으로는 연이 가득히 떠있는 강물이 흘러 지나갔는데, 연꽃이 피는 여름은 그럴 듯 했지만 꽃이 시든 가을부터 겨울까지는 잎이 시들고 물이 잦아든 강 위로 솟아오른 연대들이 을씨년스럽다 못해 그로테스크하기까지 했다. 크기도 재벌가의 별장 치고는 작은 편에 위치도 상대적으로 많이 노출되어 있는 편이어서, 집안의 사람들은 특별한 볼일이 없는 한 이 별장에 잘 오지 않았다.

물론, 그래서 다니엘은 이 곳을 좋아했지만.

별장 안으로 들어간 다니엘은 재킷을 대충 벗어 소파 위에 내던지고, 타이의 매듭을 몇 번 잡아 늦추었다. 지훈은 그 몇 발 뒤에서 쭈뼛거리며 따라 들어왔다. 그는 못 올 곳에라도 온 것처럼 연신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이 낯선 공간의 정체를 파악하기 위해 애를 썼다.


“앉아.”


좀체로 의자에 앉으려 하지 않는 지훈에게, 다니엘은 턱짓으로 제 옆자리를 가리켜 보였다. 지훈은 그 걸 분명히 보고도 한참을 어쩔 줄을 몰라 하다가, 안 되겠다 싶었던지 말없이 다니엘의 옆으로 와 앉았다. 슬리퍼도 신지 않은 작은 발에는 흰 줄무늬가 들어간 회색 양말을 신고 있었다.

다니엘은 몸을 옆으로 틀어, 노골적으로 지훈을 ‘감상’하기 시작했다. 그 시선이 노골적으로 변하는 만큼, 지훈은 무릎에 얹은 손을 쥐었다 폈다 하며 안절부절 했다. 눈이 깜빡여지는 속도가 점점 빨라졌다. 그래서일까, 콧잔등에 얹힌 동그란 안경은 오늘따라 매우 답답해 보였다.


“왜요.”


지훈은 한참만에야 그렇게 물었다.


“저 뭐 이상해요?”
“아니.”
“그런데 왜 그렇게.”
“여기 볼 게 그대 밖에 없잖아, 박지훈 씨.”


꿀꺽, 마른침을 삼키는 울대가 가만히 출렁거렸다.

지훈은 언제나 다니엘의 예상을 빗나갔다. 호텔로 오라고 불렀을 때도 정말로 올 줄은 몰랐고, 당장 기어들어오라고 으르렁거렸을 때도 정말로 순순히 되돌아올 줄은 몰랐다. 지훈이 조금만 더 나이를 먹었고 노련했다면, 그 순순함에 허를 찔려 되레 당황한 자신의 속을 뻔하게 꿰뚫어보았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물론 지금의 지훈으로서는 쉽지 않은 일이겠지만.


“저기.”


한참이나 얼굴만 뚫어지게 쳐다볼 뿐 다음 말을 하지 않는 다니엘에게, 지훈은 더듬거리며 다시 말을 걸어왔다.


“초콜릿, 별로였어요?”
“그건 왜?”
“화난 것 같아서.”


다시 한 번, 목덜미가 가볍게 들썩거렸다.


“제가 구할 수 있는 것 중에서는, 그래도 좀 좋은 거긴 했는데.”
“….”
“실장님 입에는 별로였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조금 전에야 들었어요.”


그 말은 듣는 사람에게 기묘한 패배감을 안겨주었다. 그 초콜릿 한 조각을 입 속에 넣던 순간 퍼지던, 그 달착지근한 맛과 벚꽃의 향이 뚜렷하게 떠올라서.


“맛있었어요. 적당히 싸구려 같고. 박지훈 씨처럼.”


움찔, 눈이 떨었다. 지훈의 눈길은 탁자 위에 다니엘이 내던지듯 내려놓은 벚꽃 초콜릿 상자를 초조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사 줘 놓고, 본인은 맛은 봤나?”


다니엘은 손을 뻗어 초콜릿 상자를 열었다. 본래 여섯 개가 들었던 상자 안에는, 이제 초콜릿 다섯 개가 남아 있었다. 다니엘은 그 중 하나를 집어 지훈에게 내밀었다.


“자. 먹어 봐요.”
“괜찮아요. 저는….”
“나한테는 먹여 놓고, 본인은 안 먹겠다는 건 무슨 심보야? 독이라도 탄 건가?”
“….”


그렇게까지 말하자 어쩔 수가 없었던지, 지훈은 손바닥을 내밀어 다니엘이 주는 초콜릿을 받았다. 받아놓고도 한참을 머뭇거리다가, 그는 매우 조심스럽게 초콜릿을 집어 입 속으로 삼켰다. 별로 크지도 않은 초콜릿이었는데, 그 초콜릿을 문 지훈의 입술은 대번에 움직임이 부자연스러워졌다.

그 순간, 다니엘은 지훈의 목을 휘어감고 그 입술에 입을 맞추었다.

입에 문 초콜릿의 탓일까, 앞전처럼 지훈은 야멸치게 입을 다물지 못했다. 어설프게 다물려진 입술을 사정없이 헤치고 들어가, 다니엘은 지훈의 입 속을 헤집었다. 초콜릿의 맛, 딸기 맛, 벚꽃 맛, 타액의 맛, 입술의 맛, 이런 것들이 전부 뒤섞인 키스는 혼란스러웠고, 어지러웠다. 지훈은 꼼짝도 못하고 그 자리에 굳어졌다. 그런 지훈의 몸을 끌어안고, 다니엘은 제가 하고 싶은 만큼 실컷 그 입술을 깨물고 빨았다. 그 어깨는 가늘게 떨고 있었다.


“왜 그래?”


타액이 묻어 반질거리는 입술에 입술을 대고 부비며, 다니엘은 물었다.


“고맙다며. 좋은 데 데려가 줘서.”
“….”
“고마우면.”
“….”
“하려던 거 해야지. 어제.”


순간 파르르 떨리던 지훈의 눈꺼풀이 열리고, 그 속의 흔들리는 눈동자가 다니엘을 향했다.


“하려던 거…요?”
“말한 거 같은데.”


입술에 입술을 댄 채 눈을 뜨고, 그 흔들리는 눈동자를 똑바로 마주했다.


“넌 나랑 자게 될 거라고.”
“….”


움찔, 품속에 들어온 어깨가 굳어졌다. 아마도 처음도 아닐 테면서, 이런 식으로 반응하는 지훈이 어줍잖아 헛웃음이 터졌다. 그러나 떨다 못해 굳어진 어깨와는 달리, 이미 남의 혀가 그 속살을 헤집는 걸 허락해 버린 입술은 무방비하게 열린 채 쌔근거리는 숨소리를 내고 있었다. 그거면 충분했다.


“한 가지는 선택권을 줄까.”


다니엘은 지훈의 입술을 빨며 물었다.


“여기서 할까, 들어갈까.”
“….”
“아니면 테라스도 좋고, 바닥도 좋고.”
“….”


혀 끝이 더듬는 입술이 서럽게 떨린다―고 생각할 무렵.

둔하게 울리는 핸드폰의 진동음이 있었다. 그게 누구든, 다니엘은 지금 오는 전화 따위에 이 순간을 방해받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지훈의 생각은 좀 다른 모양이었다. 지훈은 온 몸을 뒤틀어 다니엘을 뿌리친 후, 옆에 내려놓았던 핸드폰을 집어들었다. 파란 액정에, 다니엘도 너무나 잘 아는 전화번호 하나가 생생하게 떠올라 있었다.

아빠.
기가 막히게도, 지훈의 핸드폰에 저장된 아버지의 이름은, 그랬다.


“저기….”


지훈은 힘겹게 입술을 떨며 말했다.


“전화 받아야 돼요.”
“누군데.”
“아빠요.”


아빠.
그 말이 이렇게 역겨울 수 있다는 걸, 다니엘은 오늘 처음 알았다. 피식 웃는 입꼬리가 저도 모르게 뒤틀렸다.


“나이가 몇 갠데 아버지를 그따위로 불러.”


나이가 몇 갠데 아버지를 그따위로 불러.

초등학교 입학식을 하던 날이었다. 부모님과 함께 간 호텔 레스토랑에서, 테이블 저 편에 놓인 버터에 손에 닿지 않아 아빠 버터 좀, 하고 말을 꺼내려는 그의 귀에 들어와 박힌 것은 저런 말이었다. 몇 개. 아직 두 자리 수도 채 채우지 못한 그 무렵의 나이는, 그렇게, 아빠를 아빠라고 부를 수 있는 마지막 나이가 되었다.

그리고 그런 다니엘의 눈앞에는, 스무 살을 넘어서도 같은 사람을 아빠라고 부르는 것이 허락된 지훈이 있었다.


“친아버진가?”


여기서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였으면, 귀싸대기라도 한 대 때리려고 했다. 그러나 다행히도 지훈은 말없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그럼 뭐야. 의붓아버지야?”
“….”


지훈은 대답을 못했다. 이상한 부분에서 솔직한 녀석이라고, 다니엘은 생각했다.


“친아버지도 아니고, 의붓아버지도 아니면, 그냥 아저씨야?”
“네….”
“근데, 왜 아저씨를 아빠라고 불러?”
“그냥….”


지훈의 대답은 굼떴다.


“그렇게 부르래서요…. 저는 아빠가 없거든요….”


아빠.
그의 친아들인 자신조차, 그를 그 날 이후 그렇게 부른 적이 없는데.


“그럼.”


다니엘은 피식 웃었다.


“남이네.”
“….”
“받지 마.”
“저기….”


지훈의 눈이 흔들렸다. 그는 눈을 깜빡이며, 호소하듯 다니엘을 바라보았다.


“받게 해주세요.”
“….”
“한 마디만 하고… 끊을게요. 저 오늘 집에 없다고….”


다니엘은 손을 뻗어 제 핸드폰을 들여다보았다. 전화는 없고, 문자 메시지 한 통이 들어와 있었다. 우진이었다.


[이사님 오늘 그 집에 가시는 것 같습니다.]


문자가 수신된 시간은, 40분 정도 전이었다.


“집에도 찾아오고, 뭐 그런 사이인가?”
“네, 그냥… 가끔….”
“남이 왜 집에 찾아와?”
“….”


다니엘은 물끄러미 지훈을 쳐다보았다.


“설마, 애인이야?”
“….”


지훈의 눈이 커다랗게 떠졌다. 그리고 그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반쯤은 가증스러워서, 반쯤은 흐뭇해서, 다니엘은 소리 없이 미소를 지었다.

그 사이, 끊어졌던 전화는 다시 울리기 시작했다. 지훈이 아니라, 자신이 그 전화를 받으면 어떨까 싶었다. 어떡하죠 아버지. 아버지 애인이, 아버지가 16억이나 처발라서 집까지 사서 들어앉힌 그 애인이, 당신이랑 아무 사이도 아니라는데.


“받지 마.”


다니엘의 손 끝이 지훈의 목덜미를 쓸었다.


“받으면.”


이미 피가 몰려 빨갛게 달아오른 귓가에 입술을 대고, 그렇게 속삭였다.


“죽여 버릴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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