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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성][녤윙] 난반사亂反射 K

-이제 겨우 스물한두 살 먹는, 젊다 못해 어리고 예쁜 나이였다.











가뜩이나 깊은 잠을 잘 못 자는 터에, 오늘은 분명 무슨 일로든 이른 새벽 잠에서 깨게 될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그리고 슬프게도 언제나 이런 종류의 예감은 어김없이 들어맞았다.

새벽 세 시가 조금 지났을 무렵, 다니엘은 식도를 기어오르는 기분 나쁜 통증에 잠에서 깨 일어나 앉았다. 역류성 식도염, 이라는 병명까지 붙일 것까지는 없지만,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린 새벽엔 저도 모르게 위액이 역류해 목구멍이 타들어가는 듯한 통증을 느끼며 잠에서 깨는 일이 있었다. 명치를, 그보다 조금 위 목덜미 아래를 누군가가 양껏 쥐어지른 듯한 통증에 다니엘은 잠시 몸을 웅크린 채 신음했다. 제법 오래 되었지만, 아무리 겪어도 익숙해지지 않는 종류의 불쾌한 감각이었다.

일단은 인후를 지나 코 끝까지 올라온 이 씁쓸한 위액의 맛을 가시는 것이 우선이었다. 다니엘은 비틀거리며 바깥으로 나가 냉장고를 열고 생수 한 병을 따 반 병 정도를 단숨에 들이켰다. 가뜩이나 위산이 긁고 지나간 식도 위를 찬물이 훑고 지나가는 감각은 진저리가 쳐질 만큼 싸늘했다. 다음 순서로는 담배를 한 대 피워 물었다. 이런 짓을 하면서 이 증상이 생기지 않기를 바라는 건 스스로가 생각해도 별로 양심은 없는 짓이었다. 머리가 띵했고, 그 다음으로 속이 눅씬하게 아렸다.

이런 새벽은 익숙했다. 이런 종류의 통증은 고등학교 2학년 무렵부터 잊을 만 하면 한 번씩 다니엘의 새벽을 휘저어 놓고 사라지곤 했다. 그 때까지 전교 1등을 한 번도 놓친 적이 없었던 다니엘은 지방의 한 고등학교에서 전학 온 낯선 녀석에게 한 문제 차이로, 태어나서 처음으로 전교 1등을 뺏겼다. 딱 한 문제 차이였다고 말하는 자신에게, 아버지는 그렇게 말했다. 그 녀석이 너만큼, 아니 너보다 더 많은 돈을 들여가며 공부하는 녀석이라면 그걸로 됐다고. 그러나 그게 아니라면, 그게 한 문제 차이든 열 문제 차이든 그건 너의 패배라고. 원래 패자에게는 구질구질한 핑계가 많은 법이지, 라고 말하며 빙글빙글 웃는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던 아버지의 표정을, 다니엘은 지금까지 한 번도 잊은 적이 없었다.

어느새 담배 한 대가 다 타들어갔다. 그것으로는 어딘가 미진해, 한 대를 더 꺼내 물었다. 그러게, 순순히 그렇게 끝나 주기에는 긴 하루였다. 아직도 조금은 멍한 머리 속으로, 어제 하루 있었던 일들이 차례차례 스쳐 지나갔다. 문득 손을 뻗어 핸드폰을 집어든 것은, 집으로 돌아오기 전 마지막으로 갔던 H호텔의 일이 떠올랐기 때문일 터였다.

집에는, 갔나.

그러나 그렇다고 하기에는, 우진에게서 아무런 보고도 들어오지 않은 점이 마음에 걸렸다. 시간이 늦어서 전화를 하기가 곤란하다면 집에 잘 데려다주고 왔다는 문자라도 한 통 보내 놓는 것이 우진의 방식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우진에게서는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아직까지 자고 있는 건가.

그러나, 그런 것 같지는 않았다.


[안 오시는 거예요?]


뭐지, 이 기다리기라도 했다는 듯한 문자는. 다니엘은 반사적으로 문자가 수신된 시간을 살폈다. 저녁 10시가 조금 지난 시간이었다. 집에 도착해 샤워를 하고 있을 무렵이었다.


[이 번호는 누구 번호예요? 전화 했다가 그냥 끊었는데]
[냉장고 안에 있는 음료수 마셔도 되는 건가요?]
[벚꽃잎 모양 입욕제가 있는데 써도 되는 건가요?]


그 문자들은 어른의 것이라기보다는, 동물원에 처음 간 어린애의 반응과 비슷해 보여서, 다니엘은 가만히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렇게 조금씩 조금씩 액정을 스크롤하던 다니엘의 손가락이 잠시, 멎었다.


[저 그냥 여기서 자고 가도 돼요? 이렇게 좋은 데는 처음 와 봐서요]


다니엘은 잠시 입을 다물었다.

아무리 집안에서 반쯤 내쳐졌다고는 해도, 어쨌든 아버지는 할아버지의 외아들이었고 집안의 장남이었으며 그룹의 3세였다. 그룹의 경영 일선에서나 배제 당했을 뿐, 그는 여전히 제 마음대로 처분할 수 있는 재산을 수백억 정도는 가지고 있었다. 그러니 그 중 16억 정도를 뚝 잘라, 애인이 살 집을 강남 한 복판에 구해준 것도 그리 못할 일만은 아니었다. 우진이 그의 재산 동향을 감시하기 전 지훈에게 무슨 돈을 얼마나 썼는지 모르지만, 그게 얼마든 충분히 가능했다. 재작년쯤인가, 아버지는 당시에 열을 올리던 한 신인 탤런트에게 혼이 나가 캐나다 어느 지역엔가 별장을 사 준 적도 있었다. 그런 것에 비하면 지훈에게 쓴 돈 정도는 별 것도 아닌 편이었다.


“아를 뭐 어떤 데로 끌고 다니는 건데.”


그런데, 그런 주제에, 그 살뜰한 애인에게 호텔 펜트하우스 구경 한 번 제대로 시켜주지 않은 건가.

인생은 언제나 타이밍이다. 혹은, 주파수다. 내게는 절실한 것이 상대에게는 절실하지 않기도 하고, 내게는 대수롭지 않은 것이 상대에게는 간절하기도 하다. 양자가 잘 들어맞아, 나와 저가 동시에 간절하고, 나와 저가 동시에 대수롭지 않은 그런 관계는, 슬프지만 그리 흔하지는 않게 마련이었다. 아버지와 지훈의 관계, 아버지와 자신의 관계도 어쩌면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고 다니엘은 생각했다. 정작 아버지가 사들고 들어오는 별 것 아닌 주전부리 거리가 고팠던 자신에게는 호텔 레스토랑의 비싼 디너를 생색내듯 계산하고, 돈 잘 쓰는 잘난 애인이 필요할 지훈에게는 집구석에 처박혀 치킨 조각이나 뜯고 있는 아버지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바로 그 부분에 대한 감일 것이었다.


“애 쓴다.”


생각해 보면, 그랬다. 이제 겨우 스물한두 살 먹는, 젊다 못해 어리고 예쁜 나이였다. 그런 나이의 남자애가, 뭐 그리 절실한 애정이 있어서 아버지뻘도 넘는 나이의 사람과 진심어린 ‘연애’를 하고 있을 리는, 없었다. 이왕 그런 거라면, 좋은 데도 많이 가고, 좋은 것도 많이 먹고 하는 것이 그 목적 중 하나일 텐데. 좋은 데 좀 데리고 다니지.


[그런데 여기서 자고 가면 돈 제가 내야 되는 건가요?]


그 문자가 들어온 시간은 한 시간 쯤 전이었다.










그다지 제대로 잔 것 같지는 않았다.

별로 개운하지도 않은 몸 상태로 일어나, 다니엘은 출근 준비를 했다. 샤워를 하고, 면도를 하고, 드레스 셔츠를 입고 타이를 매면서 다니엘은 우진에게 전화를 했다. 어제의 그 일이, 어떻게 마무리되었는지 대충 짐작은 갔지만 그래도 확인은 해야 할 것 같아서.


[예.]
“어제 일은.”


그런 문자를 보내 놓고, 지훈이 갑자기 마음을 바꿔서 우진을 불러서 집에 데려다 달라고 했을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러나 자신이 거기까지 알고 있다는 사실이 우진에게 알려지는 건 별로 내키지 않았다. 그래서 짐짓 아무 것도 모르는 체, 그렇게 물었다.


[연락이 없었습니다.]


예상대로, 우진은 그렇게 대답했다.


[먼저 연락해 볼까 했습니다만, 그것도 어째 좀.]
“뭐하러.”


다니엘은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지가 알아서 갈만 하니 연락 안했는갑지.”


실제로도 그러지 않았을까 하고 다니엘은 생각했다. 지훈을 그리 오래 본 것은 아니었지만, 그 지훈이라면 아마도 택시를 타든 버스를 타든 저 혼자 집으로 돌아가지 않았을까 하고. 답지 않게도.


[아침에 호텔에 확인해 본 바로는, 그냥 거기서 잤다고.]
“….”
[조금 전에 체크아웃하고 나간 모양입니다.]


다니엘은 흘끗 눈을 돌려 시계를 보았다. 학교를 가든 아르바이트를 가든, 지금쯤엔 움직여야 오늘의 일상을 살아낼 수 있겠지. 다니엘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 순간, ‘호텔’이라는 말이 모래알처럼 입 속을 서걱거렸다.

우진에게 비밀 같은 것은 없었다. 그런 걸 만들려고 한 적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한 적도 없었다. 그러나 이 일도 그런 범주일까. 어제 예상치 못한 이런 저런 변수들이 생기지만 않았더라면 자신은 여섯 시까지 호텔로 갔을 것이고, 거기서 지훈에게 무슨 짓을 했을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이었다. 아무리 임의롭고, 아무리 편하고, 아무리 비밀이 없는 사이라도, 이런 것까지 그 눈 앞에 거리낌없이 내보여도 과연 괜찮은 것일까. 그런 때아닌 생각이 다니엘의 입술을 무디게 만들었다.


“그런데, 진아.”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는 전에 없이 더뎠다.


[예.]
“니는, 안 궁금하나.”


거리끼는 일이 있을 때는, 무조건 선수필승先手必勝. 그것은 심 여사의 말이기도 했고, 다니엘의 믿음이기도 했다. 지금도 그랬다.


“내가, 금마를 호텔로 불러서.”
[….]
“뭘 어떡할 생각이었는지.”


허를 찔린 듯, 우진은 멈칫했다. 그러나 그 침묵은 오래 가지 않았다. 아울러, 우진을 그렇게나 오래 본 다니엘이 아니면 차마 알아채기 어려울 정도로 순식간이기도 했다.


[제가 알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일단 우진은 그렇게 선을 그었다.


[그리고, 그 사람한테 뭘 어떻게 하시든.]
“….”
[그럴 만 해서 그러시는 거 아니겠나.]
“….”
[뭐 그렇게.]


그것이 우진의 대답이었다. 그 대답은 너무나 우진다워서, 무슨 말을 덧붙일 엄두도 나지 않았다. 다니엘은 한동안 입을 굳게 다문 채 그의 말을 듣고만 있었다.


“그래 생각해 주믄 고맙고.”


그래서 한참만에야 겨우 그렇게 대답할 수 있을 뿐이었다.


“통화가 너무 길었제. 이따가 보자.”
[예.]


짤막한 대답을 끝으로 전화는 끊어졌다.

다니엘은 핸드폰을 내려놓고 타이의 매무새를 바로잡았다. 그다지 썩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다시 풀었다가 매는 것도 귀찮아 그쯤 해두기로 했다. 마지막으로 재킷을 걸치고, 핸드폰과 가방을 챙겨들었다. 집어든 핸드폰의 액정 위로, 사진 한 장이 떠올라 있었다. 하얀 탁자 위에 놓인 벚꽃이었다. 아니, 벚꽃잎 모양 입욕제 다섯 개를 벚꽃 모양으로 맞추어서 찍은 사진이었다.


[고마워요 좋은 데 데려가 줘서]


지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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