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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성][녤윙] 난반사亂反射 I

-사람 말을 어디로 들어처먹는 거야, 박지훈 씨.











그 자리에 돌이라도 된 듯 굳어져 얼어붙은 지훈을 버려두고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다니엘은 우진에게 전화를 했다. 언제나처럼, 자다 깬 건지 아닌지도 분간할 수 없는 목소리로 전화를 받는 그에게, 다니엘은 이제부터 지훈을 철저히 감시할 것과, 아버지가 그 집으로 가려는 낌새를 보이면―예의 피자집에서 카드를 쓴다거나― 즉시 보고하라는 짤막한 지시를 내리고 전화를 끊었다.

사실 그 통화는 무용한 것이었다. 무용하다기보다는, 굳이 또 내릴 필요가 없는 것에 가까웠다. 처음 다니엘이 지훈의 존재를 거슬려하기 시작한 무렵부터, 우진은 솜씨 좋은 흥신소 수준으로 지훈의 뒤를 캐 날마다, 그러니까 다니엘이 보든 안 보든 저 나름의 보고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조금 전의 그 통화는 지훈에 대한 자신의 심기가 그만큼이나 불편하다는 것, 그래서 행여나 있을지도 모를 놓치는 구석이 없도록 우진이 한 번 더 챙기게 만드는 정도의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터였다.

집으로 돌아와, 다니엘은 노트북을 켜고 그간 시간이 없기도 했고 신경을 쓸 여력이 없기도 해서 받아만 놓고 보지 않던 지훈에 관한 자료들을 하나하나 다시 꼼꼼하게 읽었다. 지훈의 전공은 미술 중에서도 회화,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 누구의 도움도 없이 그 돈 많이 드는 미술계에서 알아서 생존할 수 있을 정도의 천재도 아니었다. 도대체 저런 걸 전공해서, 학교를 졸업하면 뭘 해서 먹고 살 수 있을까가 걱정스러운, 지극한 범재(凡才). 우진이 조사해 놓은 내용 속의 지훈은, 그랬다.

지훈은 미혼모의 아들이었다. 그의 호적에는 아버지라는 것이 존재한 적이 없었다. 그와 같은 박씨 성을 쓰는 낯선 여자의 이름만이 어머니로 존재하고 있을 뿐이었다. 박지영이라는 그 낯선 이름 위에, 다니엘의 시선은 한참을 머물렀다.

그는 손을 뻗어, 다시 통화 버튼을 눌렀다. 마지막으로 그와 통화를 한 것은 우진이었고, 전화는 다시 그리로 연결되었다. 지금 시간은 새벽 세 시가 가까워오는 시간이었지만 지금 당장 떠오른 의문을 해결하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을 것 같았다.


[예.]


대답하는 목소리는 여전히 감감했다. 늦은 시간에 자꾸 전화해서 안됐다는 말은, 떠오르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입 밖으로 나오지는 않았다. 다니엘과 우진은 그런 문제로 사과를 하거나 받는 사이가 아니었으므로.


“한 가지 물어보자.”
[말씀하십시오.]
“니는.”


16억짜리 아파트를 대출 한 푼 끼지 않고 남의 명의로 돌려줄 만한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애인이어도 마찬가지겠지만, 자식이어도 가능한 이야기였다.

어쩌면 지훈은, 자신의 배다른 동생일지도 모른다. 이 끔찍한 생각이, 그에게 강제로 키스를 해버리고 난 그 날 밤에나 들었다는 것은 내심 꺼림칙했다.


“왜 박지훈이가.”


어느 쪽이든 기분이 더럽기는 마찬가지겠지만.


“강승태 씨 애인이다, 라고 생각하게 됐는데.”
[….]


흔치 않은 일로, 전화기 저편이 잠시 감감해졌다.


“아니, 내 말은, 애인 같은 게 아니고.”
[혼외자 말씀이십니까.]


역시 우진은 눈치가 빨랐다. 하려던 설명을 채 다 끝내지도 않았는데 그는 이미 다니엘이 물으려던 말을 정확하게 눈치 채고 있었다.

지훈과 다니엘이, 배다른 형제이거나 한 관계가 아니냐― 하는.


[사실 처음에는 그 쪽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저도.]
“….”


다니엘은 입을 다물었다.


“그러니까, 아니더라는 이야기네.”
[예.]


우진의 대답은 서두르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머뭇거리지도 않았다.


[확인했는데, 이사님하고는 유전적으로 아무 관계도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무엇을, 어떻게, 어떤 식으로 확인했나에 대한 질문은 굳이 필요도 없었고 하고 싶지도 않았다. 다른 사람이 아닌 우진이 확인했다면, 그것으로 끝이었다. 박지훈은 강승태의 아들 같은 게 아니었다. 그 말인 즉, 자신과 박지훈은 아무런 관계도 아니라는 말이었다. 그 결과는 다행이기도 했고, 그렇지 않기도 했다.


“치킨이니 피자니, 이런 거 사들고 간다는 말이 마음에 걸려서.”


전에 없이, 변명하듯 다니엘은 말했다.


“그거, 딱 아버지가 자식한테 할 만한 짓 아니가.”
[그거는 그렇습니다만은.]


우진은 무뚝뚝하게 대답했다.


[이사님은, 딱히 그런 스타일은 아니신 거로, 저는 알고 있습니다.]
“….”


그 무뚝뚝한 말 속에 담긴 서투른 위로의 말을, 다니엘은 읽었다. 명색 친자식인 당신에게도 하지 않는 짓을, 혼외자에게 할 리가 있겠느냐는. 그런 걸로 괜한 박탈감이나 질투를 느낄 필요는 없으리라는, 아마도 세상에서 우진만이 건넬 수 있는 그런 위로의 말을.


“그래.”


다니엘은 짤막하게 대답했다.


“끊고 자라. 인제 전화 안할 거니까.”










별로 좋은 꿈을 꾼 것 같지는 않았다. 늦게 자리에 든 것에 비해, 또 지나치게 이른 시간에 다니엘은 잠에서 깼다.

자고 일어나 텁텁한 입에 담배 한 대를 피워 물고 다니엘은 지끈해 오는 머리를 짚었다. 어제 있었던 일들, 어제 다 끝내지 못해 오늘로 밀려온 일들, 오늘 해야 할 일들이 어지럽게 뒤섞여 정리가 채 끝나지 않은 머리 속을 울렸다. 다니엘은 피곤한 기색이 가득한 얼굴로 핸드폰을 집어 들고 그 액정에 떠오른 오늘의 스케줄 알람을 건성건성 읽어 넘겼다.

그러다가 문득, 그의 손가락이 액정 위에 가만히 멎었다.


[굿모닝]


방금 수신된 그 문자 메시지는, 핸드폰에 저장조차 되지 않은 번호에서 온 것이었다. 도대체 이따위 문자를 이 시간에 보내는 게 도대체 누구인지, 다니엘은 통화 내역을 눌러 보고서야 그것이 지훈인 것을 알았다. 그리고 어제 새벽, 불이 다 꺼진 거리에서 있었던, 그 남우세스러운 몸싸움까지도.

그러니까, 그런 일이 있고 난 직후에, 한다는 반응이.

다니엘은 지극히 회의적인 기분이 되어, 협탁에 얹어놓은 핸드폰의 모서리를 구슬치기라도 하듯 손끝으로 툭 튕겼다. 어제 그 일은, 당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그냥 일종의 폭력에 지나지 않았을 터였다. 더욱 나쁜 것은, 지훈은 아마도 자신이 왜 그런 종류의 악의에 노출되었는지조차도 모르고 있을 거라는 사실이었다. 행여나 2탄이, 3탄이 있을까봐 숨어서 전전긍긍해도 모자랄 판에, 이런 발랄한 아침 인사는 도대체 무슨 의미일까. 감감하게 죽어버린 핸드폰의 액정을 뚫어지게 노려보느라, 다니엘은 잠시 입에 물린 담배를 빠는 것을 잊었다.

결국 다니엘이 통화 버튼을 누른 것은 그로부터 몇 분이나 더 시간이 지난 후였다.


[….]


제가 먼저 전화를 건 주제에, 다니엘은 상대가 입을 열기 전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덕분에 그 어색한 침묵은 제법 수 초를 갔다. 결국 먼저 입을 연 것은 지훈이었다.


[아, 안녕하세요.]


그 첫 마디는 또 지나치게 공손해 어이가 없을 지경이었다. 적당히 하고 돌아가려던 자신을 불러세우던 목소리, 키스한 후 입술에 묻은 타액을 닦아내던 손등, 이 이른 시간 보낸 문자, 그리고 전화를 받는 경직된 음성.

도대체, 너는 그 중에 뭐냐―고 물어보고 싶어졌다.


“뭐지?”


그래서 대뜸, 떼어놓고 그렇게 물었다.


“이 깜찍한 아침인사는.”
[아, 저.]


대답은 얼른 나오지 않았다. 우물거리는 낌새가 여기까지 느껴져, 슬그머니 짜증이 났다.


[그게요.]


그로부터도 한참을 더 미적거리다가, 지훈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제가, 그렇게 해 줘야 된다고.]
“뭐?”
[그게, 그러니까.]


우진과 통화를 하면서, 할 말을 우물거리지 않는 상대와의 통화에 너무 익숙해져 버린 게 틀림없다고 다니엘은 생각했다. 지훈의 우물거림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신경이 한참씩 더 곤두서는 것이 뚜렷하게 느껴졌다.


[어제, 그런 일이.]
“그런 일, 뭐.”


대꾸하는 음성은 그지없이 퉁명스러웠다.


“키스?”
[….]


또, 감감한 침묵.

아니 그래서 도대체 뭘 어쩌겠다는 거냐는 물음이 입 속을 맹렬히 맴돌았다. 짝사랑하는 남자애와 제대로 된 키스도 아닌 버드 키스 정도를 겨우 하고 밤새 잠 못 들고 뒤척거리다가, 다음날 날이 새자마자 전화하는 여자애처럼, 지금 이게 도대체 뭐하자는 거냐고 물어보고 싶어 입술이 달싹거렸다.


“그래서, 키스가 왜.”
[어제 그런 일도 있었는데.]


지훈은 한참이나 더 우물거리다가, 겨우 그렇게 대꾸했다.


[제…가 먼저 말을 걸어줘야, 상대가 편하다고.]
“지금 무슨 소릴 하는 거야, 박지훈 씨.”


다니엘은 담배를 든 손으로 짜증스레 흘러내린 머리를 쓸어 넘겼다.


“그 말은, 박지훈 씨가 먼저 연락을 안 하면, 내가 연락도 못하고 끙끙 앓기라도 할 거라서, 친히 먼저 연락을 하셨다 뭐 그런 의민가? 맞아요?”
[그런 건 아닌데요.]


그러나 말의 내용과 달리, 그 말투는 다분히 변명조였다.


[아무래도, 저 좋아하는 거 맞다고.]
“누가.”
[실장님이요.]


지훈은 웅얼거리며 대답했다.


[안 좋아하면 그럴 수가 없는 거라고.]


상황에 맞지 않게, 또 웃음이 터질 뻔 했다. 어쩌면 이렇게, 매사가 저 좋을 대로일 수가 있을까. 사랑받는 인간의 특권 같은 건가.


“사람 말을 어디로 들어처먹는 거야, 박지훈 씨.”


다니엘은 내뱉듯이 말했다.


“내가 어제 분명히 말한 거 같은데. 나는 좋아하는 사람한테는 그런 짓 안 한다고.”


스스로 딱히나 성격 좋고 젠틀한 인간이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그러나 지금껏 살면서 해 본 몇 번의 연애 중, 단 한 번도 그런 식으로 사람을 다뤄 본 적은 없었다. 그러니까, 이 순진하다 못해 어딘가 모자란 인간에게는 어젯 밤의 그것조차 일종의 구애로 느껴졌던 모양이다 생각하니 손마디가 하얗게 질리도록 손아귀에 힘이 들어갔다.


“못 믿는 모양인데, 주소 하나 줄 테니까 저녁 여섯 시까지 그리로 와.”


어제 그 걸로, 부족했나 보군.


“믿게 해주지. 내가 박지훈 씨를, 아주 끔찍하게 싫어한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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