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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성][녤윙] 난반사亂反射 G

-내가 지금 박지훈 씨 쫓아다니면서 괴롭히고 있는 중이라고 말하는 거야.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을 하고도, 꾸벅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는 것을 잊지 않은 지훈이 사무실 밖으로 사라지는 것을, 다니엘은 한참동안이나 미동도 하지 않은 채 지켜보았다. 그리고 그는 카페 체인 본사로 전화를 걸어 그린 게이블스의 대략적인 위치를 알려주고, 인수를 적극적으로 검토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그것은 절반 정도는, 지훈이 놓고 간 그 커피가 다 식은 주제에도 제법 나쁘지 않은 맛을 냈다는 이유 때문이기도 했다.

이제 그걸로 끝이었다. 건물 한 귀퉁이, 탁자 두세 개 겨우 들어갈 만큼 매장이 작은 그 카페의 주인이 대기업의 인수 제의를 거절할 리가 없었다. 그렇게 인수가 결정되고 나면, 그 때부터는 한낱 아르바이트생 따위의 징징거림이 먹혀들 여지 따위는 바늘구멍 하나만큼도 남아있지 않을 것이었다. 그리고 그 다음부터는 설령 자신의 마음이 바뀌어 지훈을 도와주고 싶어진대도 자신이 할 수 있는 일 따위는 하나도 남지 않게 될 터였다. 아니, 물론 그렇지는 않겠지만, 지금의 생각 같아서는 이 마음을 돌이켜 가며, 자신이 직접 지시한 일을 되돌리는 번거로운 짓을 해 가며 그를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날 까닭이 없었다. 그냥 이 일은 여기서 이렇게 끝나게 될 셈이었다.

우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역으로, 그의 아무런 대꾸 없음에서 다니엘은 우진이 이 일을 그리 마뜩찮게 생각하고 있다는 징후를 읽을 수 있었다. 명색 재벌 가 사람이 한 학기 학비를 걱정해야 하는 서민을 상대로―정말로 그런 건지는 차치하고라도― 할 만한 짓은 사실 아니었다는 자각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고, 그래서 다니엘은 전에 없이 우진에게 그의 생각을 물었다.


“제 생각이랄 게 뭐 있겠습니까만은.”


언제나처럼 우진의 대답은 조심스러웠다.


“그렇게까지 하실 거였는가, 하는 생각은, 조금.”
“….”
“어쨌거나, 말 많은 세상 아닙니까.”


우진은 덧붙였다.


“그 친구가 조용히 있으믄 다행인데, 괜히 인터넷 같은데서라도 떠들면, 갑질 어쩌구 하는 말이 나올지도.”


다니엘은 대답을 하지 않았다. 몰랐던 바는 아니었다. 그리고 우진이 이 일을 언짢게 생각한다면 아마 그런 점에서가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그리고 자신의 예측은 대충 맞았다, 그 사실은, 조금 권태로웠다.


“주제넘었습니다.”


우진은 꾸벅 고개를 숙였다. 다니엘은 그런 그를 향해 손을 저었다.


“아니다. 틀린 말 아니고. 딱 니가 할 만한 말이고.”
“….”
“그런데 뒤집어서 생각하믄.”


다니엘은 우진을 돌아보았다.


“그라믄 그거 말고는, 뭐 그리 크게 걸리는 거 없다는 말도 되는 거 아니겠나.”


다른 게 걸리는 것이 아니었다. 지훈에게 가지는 자신의 이 ‘적의’가 정확히 어느 지점에서 기인하는 것인지를 스스로가 알 수 없다는 점이었다. 부모의 외도를 지켜보는 자식의 분노인지, 아버지의 애정을 빼앗긴 비뚤어진 질투심인지, 혹은 둘 다인지. 그런 것만 아니라면야,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자신이 한 짓은 엄연한 ‘갑질’이 맞았다. 갑질인 줄 알고 한 짓에 갑질이라는 욕이 따르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다지 바람직하지 못한 짓을 저질러놓고, 그에 대해 아무런 대가도 치르지 않으려고 전전긍긍할 정도로 양심이 마비된 인간은 아니었다.


“제 말 같은 게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만은.”


우진은 짤막하게 대답했다.


“그 친구한테 감정이 좋으시기는, 힘들지 않을까. 저는 그래 싶습니다.”










우진의 보고서에 의하면, 지훈은 그린 게이블스에서 알바를 마친 후 일주일에 세 번, 집 근처 편의점에서 야간 아르바이트를 했다.

지훈은 가게 밖에 나와 있는 파라솔 아래 붙은 탁자를 치우고 있었다. 첫 번째 테이블 위에는 맥주 캔 서너 개와 뜯어서 펼쳐 놓은 과자 봉지가 어수선하게 널려 있었다. 두 번째 테이블 위에는 컵라면 용기가 두 개, 삼각 김밥 껍질과 먹다 남은 볶은 김치가, 마지막 테이블에는 안에 담배꽁초를 잔뜩 집어넣은 음료수 병이 두어 개 놓여 있었다. 지훈은 말없이 그 어수선한 테이블 위에 널린 것들은 한 군데 모아, 먹다 남은 음식물 찌꺼기들을 따로 버리고 분리 수거가 가능한 것들을 따로 버리고는 빨아온 행주로 야무지게 테이블을 닦았다. 마지막으로 아무렇게나 나뒹구는 의자들을 주워서 바로 세우고, 기우뚱하게 기울어진 파라솔을 잡아당겨 바로 세웠다. 다니엘은 카운터 매대에 삐딱하게 기대 선 채, 지훈이 제가 할 일을 다 하고 안으로 들어오기를 말없이 기다렸다.


“아, 죄송합니다. 제가….”


기다리는 손님이 있는 것을 보고 반사적으로 사과의 말을 하려던 지훈은, 눈을 커다랗게 뜨고 다니엘을 쳐다보았다.

곱상하게 생긴 얼굴이기는 했다. 그러나 물론, 그것이 일평생 갖은 여자들의 품을 전전하고 다닌 아버지를 홀릴 만한 얼굴이냐 하면 그렇다는 뜻은 여전히 아니었다. 다니엘은 여전히, 아버지가 어머니의 제사를 건너뛸 핑계로 지훈을 선택했다는 사실을 납득할 수 없었다. 지훈을 볼 때마다 치밀어 오르는 감정은 아마도 그래서가 아닐까 하고 그는 생각했다.


“어.”


지훈은 더듬거리며 말을 꺼냈다.


“요새 자주 뵙네요.”


기껏 그것이, 이 갑작스러운 습격에 대한 지훈의 반응이었다.


“그러게요. 꽤 자주 보네.”
“설마 이 가게도 인수하시려는 건.”


제법 뒤끝이 남은 반응이었다. 물론 그런 것 치고는 어설프긴 했지만. 다니엘은 피식 웃었다.


“그래 볼까. 못할 것도 없는데.”


늘 피우던 담배의 이름을 댔다. 지훈은 그 담배를 얼른 찾지 못하고 한참을 두리번거렸다. 그의 이런 어설픈 점은 볼 때마다 다니엘을 화나게 했다. 정말로 최선을 다해 살고 있다면 나올 리 없는 저런 모습들이.


“거기, 위에서 세 번째 줄, 옆에서 두 번째. 파란 갑 옆에.”
“아, 네. 죄송합니다.”


한참을 더듬거리던 지훈은 다니엘이 가르쳐주는 대로, 담배를 꺼내 바코드를 찍었다.


“진열을 바꾼 지가 며칠 안 돼서요.”


대한민국의 재벌은 별의 별 걸 다 취급한다. 그래서, 다니엘의 그룹 또한 몇 단계 정도 가지를 치고 내려가면 편의점 체인 하나를 가지고 있었다. 지금이야 본사의 전략기획실 소속이지만 학교를 졸업하고 실전감을 키우기 위해 일하던 곳 중에는 편의점 체인 본사도 있었고, 그래서 편의점의 담배 매대에 생각보다 많은 이권이 몰려 있다는 것과 담배 회사에서 새 담배를 출시할 때마다 편의점들에 담배가 진열되는 배치를 바꿀 것을 요구한다는 정도도 알았다. 그래서 지금의 이 능숙하지 못한 모습이 단순히 지훈이 이 일에 최선을 다하지 않고 있다는 증거가 되지 못함도 알았다. 물론, 그걸 그렇게 이해해 주고 싶은 마음이 터럭만큼도 들지 않는다는 것은 별개의 문제였지만.


“열심히 사는 척 하느라 애 많이 쓰네요.”


그래서 일부러 그렇게 말해 버렸다. 지훈이 이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것이 꽤나 오래 전부터라는 걸, 우진의 보고서를 읽고서 이미 알고 있었으면서도. 네 형편이 넉넉하냐 그렇지 않으냐 하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로, 너는 이미 누군가의 눈에 매우 형편없는 놈으로 비춰지고 있다―라고, 그 물색없는 마음에 상처를 내고 싶어서.


“저기.”


고개를 떨군 지훈의 얼굴이, 다시 빨갛게 달아올랐다.


“일전의 일들은, 제가 좀, 어린애같이 굴었던 게 맞긴 한데요.”
“….”
“그리고, 그런 사람을 우연히 다시 보게 돼서 기분 나쁘실 수는 있는데.”
“우연?”


어이가 없어 헛웃음이 터졌다.

그러니까, 며칠에 걸쳐 자신이 한 말과 행동은 지훈에게는 별다른 상처도 주지 못한 셈이었다. 그냥, 그는 자신이 매사에 미숙하고 어린애 같아 벌어진 일이었을 뿐, 상대가 자신에게 어떠한 종류의 악의를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같은 건 터럭만큼도 하지 않고 있었다. 도대체 어째서 그럴 수 있는 건지, 얼굴을 들이대고 물어보고 싶어졌다.

내가 이렇게나 너를 언짢아하고 있는데
너는 어째서, 그런 걸 이렇게까지 까맣게 모를 수가 있느냐고.


“박지훈 씨는, 이게 우연 같나?”
“네?”


황급히 고개를 드는 바람에 콧등에 걸린 안경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그러나 그 안경에 손을 댈 엄두마저 나지 않는지, 지훈은 멍한 표정으로 다니엘을 쳐다보았다.


“박지훈 씨가 일하는 카페에 내가 커피를 사 먹으러 가고, 그 카페를 내가 다니는 회사가 인수하겠다고 하고, 박지훈 씨가 일하는 편의점에 내가 담배를 사러 오고. 이 시간에 말이지.”


지훈에게 어떠한 종류의 악의가 있었을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자신에게 집을 사주고 학비를 내주는 그 ‘아저씨’에게도 가족이 있고, 아내가 있고, 아들이 있을 거라는 생각까지를 미처 하지 못한 정도가 고작이 아니었을까. 그러나 그의 그런 때 아닌 순진무구함이야말로 지금의 다니엘에게는 가장 견딜 수 없는 부분이었다.


“이게 다 우연인 것 같냐고 묻는 거예요.”
“그, 그럼요?”
“아니, 생각을 해 봐요.”


세상엔 가끔, 귓바퀴를 잡아 당겨 입에다 대고 고함을 지르듯 말해주지 않으면 알아듣지 못하는 부류들이 있다. 지훈도 아마 그런 과인 모양이었다.

그런 거라면, 알려 주면 그만이었다.


“박지훈 씨가 일하는 데마다 나타나서 시비 거는 새끼가 있는데. 한 번도 아니고, 세 번이나.”
“….”
“그게, 우연이야? 아니면.”
“….”
“그 새끼가 박지훈 씨 벼르고 있는 거야?”


지훈은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큰 눈이 순식간에 몇 번이나 깜빡여, 뺨 아래 그늘이라도 드리운 듯 느껴질 정도였다. 그 얼굴에 드러난 당황과 당혹과 두려움이 너무나 생생해, 다니엘은 잠시 제가 하고 있는 것이 또 다른 종류의 횡포임을 잠시 잊었다.


“저, 저기, 그 말씀은.”
“응.”


달싹거리는 입술이 하려던 말을 채 맺기도 전에, 다니엘은 물어뜯기라도 할 기세로 그렇게 대답했다.


“내가 지금 박지훈 씨 쫓아다니면서 괴롭히고 있는 중이라고 말하는 거야.”
“왜요?”


그러나 지훈의 대답은 그 나름대로 속편한 것이어서, 되레 다니엘을 질리게 했다. 그 말투는 마치 태어나서 지금껏 미움이라는 것은 한 번도 받아본 적이 없는 것 같은 그런 말투였다. 감히 이 세상에 나를 미워하는 사람 같은 게 어떻게 존재할 수가 있냐고 생각하는 것 같은 그런 말투였다.

그래서 다니엘은 순간, 제가 갑이고 저 편이 을이라는 지극히 명쾌한 사실을 잊을 만큼 화가 났다.


“왜, 왜 저 같은 걸.”
“글쎄. 왤까.”


세상엔 네게 넋이 나간 그 아저씨 같은 작자들만 사는 게 아니야.

그 말을 해주고 싶어 온 몸의 피가 끓어오를 지경이었다.


“곰곰히 생각해 봐요. 그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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