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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비캠] Ruhemann's Purple

1. 보통 새 연성의 시작은 이러이러한 장면을 보고 싶다 혹은 이러이러한 대사를 쓰고 싶다는 충동에 의한 것인 경우가 많습니다. 루히만 퍼플도 예외는 아닌데요. 총질하는 다니엘을 쓰고 싶다!는 얼척없는 욕구가 이 모든 일의 시작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때마침 공개된 활활 뮤직비디오가 불을 제대로 당겨서, 이 길고 지루한 이야기가 시작되었습니다.



2. 루히만 퍼플은 원래 범죄현장에서 지문을 감식할 때, 사람의 손끝에서 분비되는 아미노산에 닌히드린 용액을 뿌리면 남보라색으로 지문이 현출되는 현상을 말합니다. 본작에서는 IMS에 전이되었는지의 여부를 검사하는 방법이라는 가상의 설정을 씌웠고, 글의 후반으로 갈수록 인간으로서의 증명 비슷한 의미로 사용되게 되었습니다.



3. 각 챕터의 소제목은 내용과 모두 일정 부분의 연관성이 있습니다. 책 제목이기도 하고 노래 제목이기도 하고 이도 저도 아닌 그냥 문구이기도 합니다. 가장 내용과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는 챕터는 12챕터인 ‘살인자의 기억법’입니다.



4. 이 글을 SF라고 평해주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그런데 이 글이 SF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과학적인 글인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어요. 루히만 퍼플의 세계는 인간이 벌로 변하는 이상한 전염병이 존재한다는 것을 제외하면 지극히 현실 그대로의 세계입니다. 제가 일간 현생에서 겪고 있는 이런 저런 힘겨운 상황들이 투영되어서 더 그렇게 느껴지는 것도 같아요.



5. 루히만 퍼플을 성장물이라고 말씀해주신 독자님이 계셨습니다. 저 자신이 부족하고 그다지 어른이 아닌데 그런 제가 쓴 글을 성장물로 읽어주신 점이 너무나 감사했습니다. 이 글에서 가장 많이 자란 것은 지훈이겠지만, 다니엘도 성우도 민현도 우진이도 다 제각기 조금씩은 자란 것 같아서 흐뭇하네요.



6. 연재 중간에 오픈한대로, 루히만 퍼플의 원래 엔딩은 지훈이 잠복기가 아주 긴 특이체질이었고 글이 진행되는 동안 조금씩 전이가 일어나, 결국 그 사실을 알게 된 다니엘이 지훈을 죽이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엔딩이었습니다. 트리비아 14를 통해 지켜보신 그 엔딩인데요. 이런 엔딩으로 갔다면 훨씬 여운이 길고 강력한(?) 엔딩이 되었을 거라고는 생각합니다만 쓰는 저부터가 별로 내키지가 않아서 포기했습니다. 이 글은 행복해지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쓴 글이니까요.



7. 이 글의 지훈
너무나 평범한 일상을 살다가, 어느 날 갑자기 모든 것을 잃고 자신의 일상 바로 옆에 존재하고 있었던 비일상의 세계로 끌려 들어온 소년입니다.
루히만 퍼플은 지훈의 성장 서사입니다. 그냥 어리고 평범하던 소년 지훈이, 자신이 가진(실은 가진지도 몰랐던) 모든 것을 한순간에 다 잃고 세상에 내던져진 후, 스스로의 힘으로 한 걸음 한 걸음 새로운 걸음마를 시작하는, 그런 이야기요.
지훈은 아직 단 것을 먹지 못합니다. 자신의 업무에 있어서도 아직은 완전하지 못하고, 앞으로도 많은 순간 흔들리고 갈등하고 고민할 겁니다. 하지만 지훈은 아마 잘 해낼 거예요. 나름 스펙 쩔고, 제각각 잘난 다른 분서원들에 비해 지훈은 아직 어리고 약하지만, 그들 중 누구보다도 올곧고 똑바른 마음을 갖고 있으니까요.



8. 이 글의 다니엘
루히만 퍼플의 또 다른 주인공, 다니엘. 이 남자는, 그냥 어른입니다. 지훈이 소년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게 보이기도 하지만, 그냥 태생부터 어른인 그런 사람을 쓰고 싶었습니다.
매사 무덤덤하고 시큰둥하고 어지간해서는 상처도 받지 않을 것처럼 보이는 그에게도, 그러나 사실은 과거도 있고 상처도 있고 힘든 일도 있습니다. 단지 어른이기 때문에 그걸 적당히 숨기고, 삭이고, 버티고 있을 뿐.
무조건 참고, 무조건 입을 다물고, 무조건 견디는 것만이 어른은 아닐 겁니다. 다니엘이 조금 더 자신에게 너그러워졌으면 하고 저는 바랍니다. 가끔은 지훈에게 삐지기도 하고, 기대기도 하고, 그러나 결정적인 순간 지훈의 앞을 막아설 수 있는, 그런 좋은 어른이 되어주기를 바랍니다. 그는 아마 할 수 있을 거예요.



9. 이 글의 성우
성우는 다니엘에게 좋은 상사이자, 롤 모델이자, 파트너입니다. 아마 SWAT 시절 처음 IMS를 목격하고 혼란을 겪고 있었을 때 성우를 만나지 못했다면 그의 인생은 정말 많이 달라졌을 거예요.
저는 11분서의 모든 멤버를 전부 좋은 사람으로 그리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좋은 사람을 한 명만 꼽으라면, 저는 성우를 꼽겠습니다. 좋아하는 사람에게 자신을 강요하지 않고, 잘못을 보고 사과할 줄 알고, 그러면서도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 서슴없이 ‘개새끼’가 될 수 있는 그는, 분명 좋은 리더이고 좋은 사람입니다.



10. 이 글의 민현
다니엘에게 성우가 있다면 지훈에게는 민현이 있습니다. 조금은 무뚝뚝하고 직설적인 다니엘 대신, 민현은 세심하고 상냥하게 지훈을 살피고 돌봅니다. 그에게는 11분서의 다른 누구에게도 없는 상냥함과 어짊이 있으니까요.
11분서의 모든 사람은 다 제각각 성격이 드센 구석이 있습니다. 가장 어린 지훈조차도 그렇구요. 그런 모두를 보듬어 안아 다독이는 것은 아마 민현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일 겁니다. 그의 진정한 가치는 그가 가진 지식이 아니라, 상처받은 사람을 가장 먼저 알아보는 그의 혜안과 지혜일 겁니다.



11. 이 글의 우진
우진은 11분서의 치트키 같은 존재입니다. 그는 모든 관계에서 한 발 떨어져 있고, 모든 업무에서도 한 발 물러나 있습니다. 그래서 그는 때로는 차갑고, 때로는 날카롭게 상황을 지켜보고, 마음의 함정에 빠진 사람들에게 일침을 던져줍니다.
루히만 퍼플을 연재하는 내내 멋잇어요! 하는 댓글을 가장 많이 받은 캐릭터는 우진입니다. 아마 우진 특유의 할 말은 하면서도 적당한 선을 지키고, 듣는 사람의 마음을 알게 모르게 배려하는 곧은 성정 때문이 아닐까 해요. 저 또한 이 길고 지루한 글을 쓰면서 우진에게서 많은 위로를 얻었습니다.
아, 우진은 솔로일까요, 아닐까요? 우진의 말을 빌자면 “비밀입니다.”



12. 이 글의 다른 인물들
이 글에 등장하는 다른 인물들은 거의 대부분 이름이 나오지 않습니다. 악역인 경우가 많기 때문인데요. 이름으로 지칭되는 악역보다는 ‘시스템’이 만들어내는 악역을 쓰고 싶었습니다. 부이사관, 서기관 등으로 호칭되는 ‘본청 사람들’이 주로 그렇습니다.



13. IMS에 대해
이 글의 모든 발단이 되는 특발성 이상변이 증후군(idiopathic morphosis syndrome)은 당연히 실존하는 병은 아니고, 제가 멋대로 단어를 찾아다 지어 붙인 미지의 전염병입니다. 벌만 봐도 무섭다거나 단 것이 땡기는 자신에 흠칫했다거나 하는 독자님들의 댓글에 저도 많이 웃었습니다. 얼마 전에는 때아닌 붉은 독개미 관련 뉴스가 터져서 뭔가 묘한 기분으로 뉴스를 보기도 했어요.



14. 저의 best

다니엘의 best

“내는 있제. 니를 지키기 위해서는 니하고도 싸울 수 있다.”

10부에 나오는 말입니다. 루히만 퍼플에서의 강다니엘이라는 남자가 어떤 사람인지를 한 문장으로 압축하면 이 대사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지훈을 사랑하지만 그 때문에 지훈을 포기하거나 놓지 않는, 다니엘은 그런 남자니까요.


지훈의 best

“그래도, 살자. 나랑 같이. 이 지옥에.”

21부에 나오는 말입니다. 사실은 17부에서 납치된 지훈에게 한 다니엘의 말을 되풀이한 것이죠. 난 존재 자체가 민폐라면서도 나와 같이 이 지옥에 살자고 다니엘을 붙잡는 지훈은, 이 순간 이미 어른이 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성우의 best

“나는 너를 원했지, 네 입에서 나오는 날 좋아한다는 말을 원했던 게 아니야.”

16부에 나오는 말입니다. 자신의 안위와 지훈을 놓고 고민하다가, ‘사랑’이 아닌 ‘도리’를 택하고 혼자 방황하는 민현을 붙잡는 성우의 말이죠. 루히만 퍼플의 옹년은 분량을 그리 많이 주지 못했지만 참 눈에 밟히는 구석이 있네요.


민현의 best

“우리 그냥 여기 남아서 같이 죽자.”

16부에 나오는 말입니다. 한 번만 눈을 질끈 감으면 사랑하는 사람을 이 지옥에서 꺼낼 수 있었는데도 민현은 그런 선택을 하지 못합니다. 그 사실을 고백하면서, 작중 내내 평온을 유지하던 민현은 처음으로 눈물을 보입니다. 같이 죽자는 말은 굉장히 단순한 말인데, 이럴 때는 또 굉장히 큰 울림을 가지기도 하네요.


우진의 best

“좋은 거를, 좋을 때, 좋은 만큼 좋아해야 안 되겠습니까.”

21부에 나오는 말입니다. 사실은 지금 이 순간 제가 정말로 간절히 듣고 싶어서, 우진의 입을 빌어 썼던 말인데요. 써놓고 보니 새록새록 마음에 와 닿는 대사이기도 합니다. 사실 굉장히 지키기 어려운 말이기도 하구요.


장면 best

12챕터, 16챕터 전체

12챕터와 16챕터는 감정선의 흐름이 비슷합니다. 다니엘과 민현이 혼자 껴안고 있던 문제의 무게에 걸려 넘어지고,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을 얻어 그 상처를 극복해 나가는 순간의 이야기에요. 두 챕터 모두 소제목도 마음에 들게 잘 붙여졌다는 점도 비슷하네요.



15. 그 외에
워너원 멤버 11명 중 다섯 명이 11분서, 나머지 여섯 명은 1분서 소속이라는 스핀오프 설정이 있습니다. 집행관 겸 분서장 지성, 집행관 재환, 방역관 성운(여기까지 사무관), 연구관 대휘(여기까지 주사), 행정관 진영(여기까지 서기)에 대만에서 파견 나온 집행관 관린(주사)이라는 설정입니다.




워낙에 긴 글이라, 할 말이 아주 아주 많을 것 같습니다. 오늘의 남비캠은 일단 여기까지. 생각나는 내용 있으면 또 돌아올게요. 이번엔, 정말로.

총 글자 수 449,330자, A4로 430 페이지. 200자 원고지 기준 2883.4장. 이 길고 지루한 이야기가 흘러오는 동안 함께 해 주신 모든 분들 감사드립니다. 제본으로 찾아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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