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내용으로 건너뛰기

[연성][녤윙] Ruhemann's Purple 124

Final. 인간의 증명 2

가끔 1인 가구 혹은 두 사람 정도가 겨우 사는 집에 집행이 잡히는 경우가 있었다. 그것은 집행관들의 입장에서 기대할 수 있는 가장 좋은 경우였다.

오늘 집행을 나온 집은 스무 평도 안 되는 자그마한 소형 아파트였다. 숨이 막힐 듯 좁은 현관에, 억지로 쪼갠 방이 두 개, 주방 겸 거실이 있었다. 천정이 너무 낮아 비행을 하기도 쉽지 않은 그 공간 속에, 두 기의 변이체는 두 방 중 큰 방 쪽에 몰려 있었다. 성우와 다니엘은 한 발씩을 쏘아 변이체들을 사살했다.

집 안에는 봉소 특유의 흉흉한 단내가 가득했다. 그러나 그에 못지 않게 눈에 띄는 것은 채도가 낮은 핑크색과 민트색으로 칠한 벽과 집안 곳곳을 장식하고 있는 아기자기한 장식들이었다. 이 집에 살던 사람들은, 도대체 어떤 행복을 꿈꾸며 살고 있었던 것일까. 벽을 가득 메운 사진들-대부분은 뺨을 맞대고 찍은 한 젊은 부부의 사진이었다-을 바라보던 다니엘은 저도 모르게 착잡해졌다.

그리고 다음 순간, 다니엘은 걸음을 멈추었다. 벽에 걸린 마지막 액자에는, 부부 외의 다른 사람이 찍혀 있었다. 아이였다. 두 사람 중 아버지를 꼭 빼닮은 아이가 있었다.

“...”

성우가 베란다를 뒤지는 사이, 다니엘은 작은 방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리고 가만히 손을 뒤로 돌려 문을 닫았다. 아니나 다를까, 그 방에는 아이가 있었다. 이제 겨우 서너 살이나 먹었을까, 걸음을 떼어놓는 아이는 아이들이 흔히 신는, 삑삑거리는 소리가 나는 운동화를 신고 있었다.

자신에게 누이가 있다면, 그 누이가 결혼을 해 아이를 낳았다면, 꼭 이만한 나이이지 않을까.

아이에게는 날개도 없었고, 더듬이도 없었다. 그러나 그 눈은 이미 인간의 눈이 아니었다. 비정상적으로 커다랗게 변한 안구는 섬뜩할 만큼 새까맸고, 흰자위가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 아이가 입을 벌리자 귓전에 찌릿한 하울링이 일었다. 다니엘은 인이어의 스위치를 내렸다.

“...”

이런, 아이를.

이런 아이를 살려둔들, 무슨 일이 일어날까.
이런 아이를 죽인들, 무슨 일이 해결될까.

머리라도 쓰다듬어주고 싶었다. 한 번 안아라도 주고 싶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도 모르는 채 이 곳에 내던져진 이 어린 목숨을 끊어야만 한다면, 그 전에, 네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설명이라도 해 주고 싶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은, 그냥 그랬으면 하는 소망으로 그쳤다.

다니엘은 재킷의 주머니를 뒤졌다. 그 속에는, 오늘 아침 지훈이 슬쩍 집어넣어준 밀크초콜릿이 들어 있었다. 지훈은 아직도 단 것을 먹지 못했다. 그러나 그러면서도, 그는 초콜릿이니 막대사탕이니 하는 달달한 주전부리들을 떨어뜨리지 않고 집에 사다 놓았다. 언젠가는 나도 먹을 수 있게 될지도 모르니까, 하는 묻지 않은 핑계를 대어 가며.

너는 어쩌면, 이런 일이 있을 것을 미리 알고라도 있었을까.

다니엘은 초콜릿의 포장지를 벗겨 손바닥 위에 올려놓았다. 초콜릿의 달콤한 냄새를 맡은 아이는 끌려가듯 다니엘에게로 다가왔다. 아직은 사람의 습성이 남아 형태가 남아있는 손바닥을 내미는 아이에게로, 다니엘은 그 한 조각의 초콜릿을 떨어뜨렸다. 아이는 기꺼이 초콜릿을 먹기 시작했다. 이제 반 이상은 형태가 일그러진 그 얼굴 위로, 그래도 웃는 것 같은 표정이 떠올랐다.

이런 아이를 살려둔들, 무슨 일이 일어날까.
이런 아이를 죽인들, 무슨 일이 해결될까.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달라지지 않는 것은, 이 아이를 인간으로서 죽게 하는 것만이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이라는 것.

들려진 다니엘의 총구가 초콜릿의 단 맛에 정신이 팔린 아이의 경동맥을 향했다. 그리고, 이제는 원문보다 더 입에 익어버린 기도를 입 속으로 중얼거렸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다만, 악에서.
다만.
다만.

“그냥, 거기 계시옵소서.”





“오랜만에 뵙습니다.”

인력풀이 좁은 조직에 몸을 담고 있다는 것은 여러 가지로 피곤하다고 성우는 생각했다. 웬만하면 다시는 마주치고 싶지 않은 사람을 또 이런 식으로 다시 마주치게 되고 마는 것부터가 그랬다. 이 사람과는, 일전의 그 열 스캔 장비 도입 일 이후로는 웬만하면 마주치지 않기를 바랐지만 그것은 성우가 원한다고 그렇게 될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잘 지냈나.”
“네, 덕분에.”

성우의 그 말은 필요 이상으로 의미심장하게 들렸다.

성우는 잠자코 상대가 권하는 자리에 앉았다. 마침 배가 고프던 참이어서, 그는 사양도 하지 않고 나와 있는 초밥이며 회며 이런 저런 것들을 주섬주섬 주워 먹었다. 어차피 제 돈으로 살 것도 아닌 바에야, 쳐다만 보고 먹지 않는 것 또한 상대에게 보태주는 꼴이 될 것 같아서였다.

“안색이 안 돼 보이는군.”
“요즘 좀 바빠서.”

성우는 미소를 지었다.

“저희 분서가 요즘 일이 좀 많습니다.”
“일이야 모든 분서가 모두 많지.”
“물론 그렇습니다만.”

성우는 접시에 놓여 있는 회를 서너 점이나 한꺼번에 집어, 초장을 듬뿍 찍어 우물우물 씹어삼켰다.

“외근조 셋이서 변이체만 열 기 넘게 상대하는 종류의 일거리는, 다른 분서에는 잘 배당되지 않는 것 같더군요.”

두 사람은 약속이나 한 듯 입을 다물었다. 부이사관은 들었던 젓가락을 놓았다. 그러나 성우는 젓가락을 놓지 않았다. 조용하게 가라앉은 방 안에는 성우가 음식을 씹는 소리만이 드문드문 울려 퍼졌다.

“조만간.”

몇 번이고 헛기침을 하던 부이사관은 그렇게 운을 떼었다.

“인사발령이 있을 예정이네.”
“그 말씀은.”
“대충 짐작은 하고 있겠지만.”

그는 따라놓은 술잔을 들어 한 모금을 홀짝 마시고는 다시 제자리에 내려놓았다.

“자네 분서는, 아마 거기서 피해가긴 힘들 거야.”
“...”

성우는 입 속에 들어있던 회를 우물거려 꿀꺽 삼켰다. 선도가 좋은 것은 틀림없었지만, 도대체 맛있는지 맛없는지를 알 수가 없다고 그는 생각했다.

“각오는 하고 있습니다.”

한참만에야 성우는 그렇게 대답했다.

“그 어떤 처분이 내려지더라도 말인가?”
“설마.”

성우는 미소를 지었다.

“다섯 다 접시 물에 코 박고 죽으라고는 안 하시겠지요.”

어쩌다가 이렇게까지 되었는지, 그건 알 수 없는 문제였다. 처음엔 분명 아주 작은 균열이었을 텐데, 이제는 너무나 그 간격이 벌어져 차마 메워볼 엄두조차도 나지 않았다. 인력풀이 좁은 조직에 몸을 담고 있다는 것은 여러 가지로 피곤하다고 성우는 생각했다. 이런 식으로 한 번 눈밖에 나 버리면, 어지간해서는 만회가 불가능하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 사실을 딱히 후회하지는 않았다.

“대중 안은 나왔지만 아직 전결이 난 것도 아니고.”
“...”
“지금이라도 바꿀 수 있는 여지는 얼마든지 있네.”
“그렇군요.”

성우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그 결정을 바꾸는 건 공짜는 아닐 테고요.”
“그건 당연한 거고.”

저 쪽에서 요구하는 ‘대가’란, 아무래도 지훈일 터였다. 지훈의 혈청이든, 지훈의 기억이든, 그것도 아니라면 지훈 그 자체이든. 그리고 나머지 네 사람 중 어느 누구도 자신의 안위와 한 소년의 ‘사람됨’을 바꾸고 싶어하지 않았기에, 그는 이 자리에 나와 앉아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자신의 사람들이라는 사실이, 성우는 내심 자랑스러웠다.

“저희 분서는, 뭐 저희 분서 뿐만이 아니지만, 사람이 아닌 것들과 싸우고 있습니다.”

성우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그렇다고 해서.”
“...”
“저희까지 사람이 아니게 될 수는 없지 않나.”
“...”
“저는, 그리고 제 분서원들은 그렇게 생각합니다.”

성우는 젓가락을 놓았다. 그리고 깊이 고개를 수그렸다.

“잘 먹었습니다. 앞으로는, 이런 식의 식사 자리는 사양하겠습니다.”

navyrain 님의 창작활동을 응원하고 싶으세요?

댓글 2

SNS 계정으로 간편하게 로그인하고 댓글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