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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성][녤윙] Ruhemann's Purple 119

21. Bird Strike 3

오늘 잡힌 집행 일정은 두 군데였다. 그런데 두 군데 모두에서 베스파 변이종이 출몰한, 그다지 운이 좋다고는 볼 수 없는 날이었다. 그래도 오늘은 지난번 그 언젠가처럼 탄환을 덜 가져오거나 하지는 않았으므로, 성우와 다니엘은 평소처럼 호흡을 맞춰 총 일곱 기의 변이체를 모두 사살했다. 다행스럽게도 하프는 발견되지 않았다.

베스파 변이체를 사살하느라 총을 난사한 날은 아무리 총기에 익숙한 두 사람이라도 가벼운 손떨림을 겪었다. 그것은 공황과 같은 정신적인 문제가 아니라 단시간 동안의 다수 격발에 따른 일시적인 현상이었다. 그 때문에 두 사람은 담배를 입에 물고도 라이터가 잘 켜지지 않아 잠시 애를 먹었다.

“형, 저기.”

한참만에야 힘겹게 담배에 불을 붙이고, 다니엘은 성우에게 말했다.

“오늘 시간 좀 내주지요.”
“무슨 시간.”

성우는 흘끗 다니엘을 바라보았다.

“지금?”
“예.”

다니엘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오늘이 좋을 거 같네요.”




아파트 문을 열고 들어갔다. 얼마전 왔을 때에 비해 많이 옅어지긴 했지만, 그래도 탄내는 여전히 집안 곳곳에 가득했다. 벽에 묻은 분진도, 그을음도 그대로였다. 그 날로부터 이젠 제법 긴 시간이 지나갔지만 이제 이 곳에는 더 이상 사람이 살 수는 없을 것 같아 보였다.

“어디야, 여긴.”

성우는 주위를 한 번 둘러보았다.

“봉소였어?”
“예.”
“우리가 집행방역했던 집이냐?”

성우는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지형지물이라도 판단해 보려는 듯이.

“나도 나이를 먹는지 요새 좀 가물가물해서.”
“우리는 아니고.”

다니엘 역시 성우를 따라 집 안을 찬찬히 훑어보았다.

“내 혼자 집행 들왔던 집이지요.”
“너 혼자?”

성우는 미간을 찌푸렸다.

“그런 일이...”

말을 하려다 말고 그는 천천히 입을 다물었다. 그제야, 여기가 어딘지 그도 눈치채기 시작한 것 같았다.

“예. 지훈이 살던 집이에요. 여기.”
“...”

성우는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그는 처음 와보는 이 낯선 집을, 마치 기억이라도 해두려는 듯 꼼꼼히 둘러보았다. 그 눈매에는 묘한 감회가 서려 있었다.

“근데 여기 출입통제가 잘 안 되는 거냐. 사람 들어왔던 흔적이 있네.”

다니엘은 성우의 시선이 멈춘 곳을 바라보았다. 바닥에 가득한 그을음이 군데군데 쓸리고 밀려나간 흔적이 있었다. 그날 밤의 여운 같은 것이었다. 아울러, 그 날 이후 이 집에는 아무도 들어오지 않았다는 반증이기도 했다.

“예. 저번에.”

다니엘은 대답했다.

“형한테 손 떨었다고 조인트 까였던 날 여기 왔었어요.”
“...”
“혼자 와서 멍 때리고 있는데, 지훈이가 찾으러 왔대. 어떻게 알았는지.”

그게, 여기쯤이었던가.

다니엘은 몇 발 걸음을 옮겨 베란다로 갔다. 그리고 그 언저리의 벽 한 군데에서, 다니엘은 누군가가 일부러 손 끝으로 분진을 쓸어간 흔적을 발견해 낼 수가 있었다. 오른쪽 눈 아래 있는, 눈물을 빨아먹는다는 그 점의 이야기.

너는 혹시, 지금도 그 이야기를 마음에 두고 있을까.

“뭐, 너도 전에 한 번 그런 적 있었잖아.”

등 뒤에서 성우가 말했다.

“지훈이 시설에서 탈주한 날, 네가 지훈이 찾았었잖아.”
“그랬었네요.”

다니엘은 선선히 대답했다.

“그러고 보니까, 그 날도 지훈이 여기서 찾았었네.”

진짜 아무 것도 없네요.

그날 지훈은 그렇게 말했었다. 그런 그에게, 자신은 아마도 그래서 아무 것도 없는 걸 네 눈으로 보고 나니 속이 시원하냐고, 뭐 그런 말을 했었던 것 같다.

“어제 박 주사 말 듣고요. 머리가 되게 많이 복잡해졌어요.”

그 말은 성우에게 하는 말이었다. 그러나 동시에 자신에게 하는 말이기도 했다. 누구에게 하는 말인지도 분명하지 않은 말을 중얼거리며, 다니엘은 고개를 들어 천정을 바라보았다.

“어제 집에 갈 때, 지훈이한테 그래 물어봤어요. 니 만약에 군대 가야 되믄, 내보고 기다려 달라 할 거가 안 할 거가 하고.”

생각하면 웃음이 나오는 이야기였다. 다른 곳도 아닌 지훈에게서 이 문제에 대한 답을 구하려 들다니. 그만큼 절박했었다는 말로 변명할 수 있을까.

“지훈이가 뭐랬게요.”
“뭐라던데.”
“검정고시 칠 거래요.”

다니엘은 피식 웃었다.

“그 다음에는 수능 볼 거고.”
“...”
“학교 들어가서, 군대 미룰 거래요. 할 수 있는 만큼.”
“...”
“그래 미루고 미루고 또 미루다가.”

담배가 말렸다. 다니엘은 주머니를 뒤져 담배 한 대를 꺼내 물었다. 성우 또한 담배 한 대를 따라 입에 물었다.

“지가 나이 먹고, 그래서 좀 덜 귀여워지믄. 그래서, 내가 지가 좀 덜 눈에 밟힐 때쯤 되믄.”
“...”
“그 때 갈 거래요.”

성우가 나직한 신음소리를 뱉았다. 그는 담배를 든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그 안색은 순식간에 창백해졌다.

“형, 내는요.”

다니엘은 그런 그를 향해 중얼거렸다.

“지금까지 한 번도, 지훈이 살려낸 거 후회한 적이 없어요.”

좀 다른 방법이 있지 않았을까, 좀 덜 가슴 아픈 다른 길이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은 가끔이나마 해본 적이 있었다. 그러나 지훈을 살려낸 것 자체는 단 한 번도 후회해 본 적이 없었다. 지금 이 순간까지도.

지금 그가 하려는 것은 좀 다른 이야기였다.

“그런데요.”
“...”
“요 며칠 새 처음으로.”
“...”
“내가 금마를, 과연 어디까지 책임질 수 있는 건가 하는 게 궁금해졌어요.”

성우가 힐책하는 듯한 눈으로 다니엘을 바라보았다. 다니엘은 고개를 돌려 그런 그의 시선을 피했다.

“내 며칠 전에, 황 선배 찾아간 이야기 들었어요?”
“대충은.”
“그 날, 황 선배한테 다 말했어요.”

다니엘은 탄식하듯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지훈이 군대 보낸다 생각하고 딱 3년만 기다린다고. 그러니까, 우리 지훈이 잘 부탁한다고. 대신에 내도 여기서, 형 잘 지킬 거라고. 그런 말까지 다 했어요.”

그것으로 끝일 줄 알았다. 거기가, 자신이 떨어질 수 있는 감정의 바닥일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그 아래에는, 자신이 미처 생각하지도 못했던 또 한 층의 바닥이 있었다.

“그런데요.”

다니엘은 중얼거렸다.

“내가... 자신이 없어요.”
“임마.”
“이게 정말로 금마를 위하는 건지, 자신이 없다고요.”

다니엘의 목소리는 가늘게 흔들렸다. 성우는 차마 말을 짓지 못하고 힘없이 벽에 기댄 채 허공을 바라보는 그를 멍하니 쳐다보았다.

“형, 내는요.”

다니엘은 독백하듯 말했다.

“어제 아침까지만 해도 자신 있었어요.”
“...”
“이거는 진짜로, 순전히 지훈이 금마를 위해서 하는 일이라고, 그 누가 뭐라고 물어봐도 대답할 자신이 있었다고요.”
“...”
“그런데 지금은 모르겠어요.”

그는 흐릿한 미소를 지으며 눈을 감았다.

“이게 지훈이를 위하는 건지, 아니면.”

그는 한참을 머뭇거리다가 덧붙였다.

“내가 힘들기 싫어서 지훈이를 버리고 내빼는 건지.”
“...”
“내는 이제 아무 것도 모르겠어요.”

성우는 맥없이 담배 한 대를 새로 붙여 물었다. 아무 것도,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 트위터 ㄴㅇ님(@nwdh_)께서 팬아트를 그려주셨습니다. 감사드려요.
https://twitter.com/nwdh_/status/9174151741679697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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