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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성][녤윙] Ruhemann's Purple 115

20. Hello, Stranger 6

지훈은 다니엘이 몇 시에 집으로 돌아왔는지 정확히 알지 못했다. 아침에 일어났을 때, 침대 옆 자리에 옷도 제대로 갈아입지 않고 쓰러져 잠들어 있는 다니엘을 발견했을 뿐이었다. 있는 힘껏 어깨를 흔들어 깨웠더니, 그는 한참만에야 힘겹게 눈을 뜨더니 다짜고짜 곁에 와 선 지훈을 확 끌어당겨 품에 껴안고 뺨을 부볐다. 그의 그런 갑작스런 스킨쉽은 싫지는 않았지만 너무 느닷없어서 당황스럽기는 했다. 그의 숨결에서는 아직도 가시지 않은 술냄새가 났다.

숙취에 시달리는지 오전 내내 다니엘은 안색이 밝지 않았다. 전에 없이 넋을 빼놓고 있다가 성우에게 싫은 소리도 두어 마디 들었다. 전에 없이, 입맛 없어도 밥 꼭 챙겨먹으라는 말을 남기고 사무실을 나서는 다니엘의 뒷모습을, 지훈은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박 서기.”

그 뒷모습을 함께 쳐다보던 민현이 지훈을 불렀다.

“어제 강 사무관 몇 시쯤 집에 왔어?”
“저도 잘 모르겠어요. 기다리다가 자 버려서.”

뒤통수를 몇 번 긁적거리다가, 지훈은 고개를 돌려 민현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선생님, 형 어제 집에 늦게 온 거 아셨어요?”
“어? 어.”

민현은 허를 찔린 듯 어색하게 웃었다.

“어제 새벽 두 시 넘어서 전화가 왔더라구.”
“전화요?”
“응. 이 시간에 웬 전화인가 생각했는데, 오늘 보니까 어제 술 좀 마셨나 싶은 생각이 들어서.”
“아.”

지훈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제 친구 좀 만나러 간다구. 술 좀 먹을 거 같으니까 기다리지 말고 먼저 자라고 하더라구요.”
“그랬구나.”

민현은 착잡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지훈은 그런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근데 왜 선생님한테 전화했을까요?”
“글쎄. 술 마셔서 운전 못하니까 좀 데리러 오라고 전화했나.”

그럴 수도 있었겠다고 지훈은 생각했다. 자기가 운전을 할 줄 알았다면 아마 자신에게로 전화를 했을 터였다. 스무 살이 되면, 다른 거 다 제쳐놓고 운전면허부터 따야겠다고 지훈은 그 순간 결심했다.

“강 사무관이 혹시 뭐 별 말은 안 해?”
“별 말이요? 글쎄요.”

지훈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근데 그건 왜 물으세요?”
“아, 아냐. 아무 것도.”

민현은 서둘러 고개를 저었다.

“다니엘 저렇게 다음날까지 고생할 만큼 술 먹은 거 간만이라서. 둘이 싸우기라도 했나 하고.”

민현은 웃었다. 어딘가 어색한 웃음이었지만, 지훈은 거기까지는 눈치를 채지 못했다.





퇴근 후, 다니엘이 지훈을 데리고 간 곳은 한강 둔치의 산책로였다.

그 산책로에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은 것 같으면서도 군데군데 인적이 있었다. 잔디밭에 자리를 펴고 앉아 맥주를 마시는 사람도 있었고 이어폰을 꽂은 채 조깅을 하거나 자전거를 타는 사람도 있었다. 애완견을 데리고 산책을 나온 사람, 사진을 찍는 사람, 누군가와 전화를 하는 사람 등등 적지 않은 사람들의 모습이 근처에 흩어져 있었다. 지난 번 이 곳에 왔을 때 그러했듯이.

이 곳은 얼마 전, 다니엘과 지훈이 각자의 마음에 묻은 사람들을 옮겨 묻은 그 강변이었다.

“여긴 왜 온 거야.”

지훈은 어색한 표정으로 다니엘을 돌아보았다. 어느새 해가 많이 짧아져, 불과 한두 달 전까지만 해도 햇빛이 남아있었을 시간에 이미 사방은 어둑어둑해져 있었다.

“니가 그랬다 아이가.”

다니엘은 멀리 강물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마음이 고되면 찾아가서 울 데가 한 군데는 있어야 된다고.”
“...”

지훈은 가만히 입을 다물었다. 갑자기, 어제 다니엘이 왜 술을 마시고 들어왔을까가 궁금해졌다.

“형 왜 그래.”
“...”
“오늘 무슨 일 있었어요?”
“무슨 일이라기보다는.”

그러나 다니엘은 별로 망설이지도 않고 그렇게 대답했다.

“니한테 할 말이 좀 있는데.”
“응.”
“다른 데보다는 여기서 하는 게 맞는 거 같아서.”

다른 데가 아닌, 여기서 하는 게 맞는 이야기. 그런 이야기는 어떤 이야길까. 지훈은 불안한 눈으로 다니엘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다니엘은 그런 지훈의 낌새를 아는지 모르는지 지훈을 불러 옆에 앉혔다. 정작 그래놓고도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멀리 흘러가는 강물만을 한참동안 바라보았다.

“지훈아.”
“응.”
“니는, 내하고 이런 사이 된 거에 아무 불만 없나.”
“불만?”
“그렇다 아이가.”

다니엘은 말이라도 고르려는 듯 잠시 입을 다물었다.

“니는 머스마고.”
“...”
“그런데, 내하고 이래 엮여서.”

다니엘은 겨우 거기까지만 말하고 입을 다물어 버렸다. 그러나 그 뒤에 나오려던 말이 어떤 것이었을지, 지훈은 대강 짐작할 수가 있었다.

“그런 거 생각해 본 적 없는데.”

지훈은 엷은 미소를 지었다.

“나는 그냥 형 좋고, 형이 나 좋아해줘서 좋고.”
“...”
“그냥, 그거 이상은 생각해 본 적 없는데.”
“맞나.”

다니엘은 피식 웃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오늘 하루를 통틀어 그의 웃는 얼굴을 처음 보는 것 같았다.

“우리 지훈이, 손 좀 줘 봐라.”
“손 왜.”
“좀 내놔 봐라. 비싸게 굴지 말고.”
“...”

지훈은 한참을 망설이다가 다니엘에게 손을 내밀었다. 다니엘은 아주 낯선 것이라도 살펴보듯 그 손을 한참이나 들여다보았다. 손등과, 손가락과, 손바닥의 손금 하나하나를 훑듯이 살펴보는 그를 쳐다보다가 지훈은 그만 웃음을 터뜨렸다.

“뭐하는 거야, 처음 보는 것도 아니면서.”
“내가 내 거 좀 보는데 뭐 문제 있나.”
“아니, 그런 건 아닌데.”

그리고 다음 순간, 다니엘은 주머니에서 반지 케이스를 꺼냈다. 그 속에 든 것은 간단한 큐빅 장식이 박힌 심플한 디자인의 반지였다. 그리고 그제야 지훈은 다니엘은 이미 같은 반지를 미리 끼고 있었음을 알아보았다.

“형, 이 거.”
“우리가, 진짜 별의 별 짓을 같이 다 했는데.”

지훈의 손가락에 반지를 끼워주며 다니엘은 조용하게 말했다.

“정작 사랑한다는 말 같은 거 한 번도 한 적 없제.”
“...”
“내가 있제, 니 진짜 많이 사랑하고.”
“...”
“내가 무슨 짓을 하든, 그거는 다 니를 위해서 하는 일이다.”
“...”
“니는 그거만 알아주믄 된다.”

지훈은 저도 모르게 꿀꺽, 마른침을 삼켰다. 행복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기쁘지 않았던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불안했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자신이 모르는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 같다는 불안한 예감에 지훈의 입술은 가늘게 떨렸다.

“형 왜 그래.”

지훈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무슨 일인데.”
“무슨 일은.”

그러나 다니엘은 그저 엷은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내가 니를 좋아하고 니가 내를 좋아해도 우리가 결혼 같은 거를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
“고작 이게 다라서, 좀 서글프기는 한데.”
“...”
“그냥, 내가 할 수 있는 거라도 해주고 싶어서.”
“형 뭐야.”

지훈은 다니엘의 소매를 잡았다.

“도대체 왜 그러는데.”
“왜 그러기는, 임마.”

그러나 다니엘은 흘러가는 강처럼 지훈을 바라보며 웃을 뿐이었다.

“내가 니 사랑한대도 불만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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