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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성][녤윙] Ruhemann's Purple 103

19. Jack the Ripper 2

살인사건의 ‘범인’은 의외로 싱겁게 밝혀졌다. 5분서 소속 한 집행관의 총기에서 범행현장에 남겨진 탄환에서 발견된 것과 같은 종류의 강선이 발견되었다. 당신이 범인이냐는 감찰관의 질문에 그는 의외로 순순하게 그 등 뒤로 벌의 날개가 보였다는 말로 본인의 범행을 자백했다.

범행을 저지른 집행관은 즉시 시설로 이송되었다. 그는 거기서 정신감정을 받았다. 어느 정도는 짐작할 수 있는 것이었지만, 그는 극도의 업무 스트레스로 인한 우울증과 PTSD, 중증의 조현병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정신이 이렇게까지 망가지는 동안 그 누구도 그 사실을 알지 못했다.

범인은 밝혀졌다. 그러나 상황은 쉽게 끝나지 않았다. 수거된 총기들은 강선 훼손 여부를 꼼꼼하게 점검받았으며 집행관들은 개별 면담에 이어 한 시간 남짓한 ‘정신 교육’을 받아야 했다. 그 걸로도 모자라 향후 당분간은 업무 일지 및 각종 보고서에 대해 강도 높은 검토가 있을 것이라는 지침이 내려왔다.

“이해 안돼요.”

지훈은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범인도 밝혀졌다면서요. 그런데 왜 저렇게까지 하는 거죠?”
“찔리니까.”

민현은 대답했다.

“집행관들 일하는 환경이 얼마나 엉망인지, 그런 일을 하면서 얼마나 케어받지 못하고 있는지를 아니까. 사람 망가지기 쉬운 환경인 걸 너무 잘 아니까, 족치는 거지. 저렇게.”
“저렇게 잡는다고 뭐가 달라지나요? 저 같으면 더 비뚤어질 것 같은데요.”
“달라지는 거 없지. 더 비뚤어지는 것도 맞고.”

민현은 펜으로 책상 모서리를 툭툭 치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데 딱히 방법이 없으니까. 가만히 내버려 둘 수도 없으니까. 그래서 저렇게밖에 못하는 거야.”
“가만 보면요.”

지훈은 투덜거리듯 말했다.

“저 분들이 제일 무서워하는 건 IMS가 엄청나게 확산되거나, 그 치료법을 영원히 개발하지 못하는 게 아니라.”
“그걸 사람들이 알게 되는 거지.”

민현은 씁쓸하게 웃었다.

“이건 그러니까, 고백할 타이밍을 놓친 거짓말 같은 거야. 기회가 한 번은 있었어. IMS TFT는 원래 보건복지부 산하 기관이었거든. 그 때까지만 해도, 윗분들은 이 사태를 ‘전염병’으로 인식하고 있었어. 그 쯤에서 사람들에게 정보를 오픈하고 조심하라고 말했으면, 글쎄. 지금쯤은 해결책을 찾았다고까지는 장담하기 힘들겠지만, 적어도 이렇게 많은 사람이 죽고 갈려나가지는 않아도 됐을 거야. 그거 하난 분명하지.”

왜 말해주지 않았는가.

지훈은 아직도 그 부분에 대한 명확한 답을 알지 못했다. 그리고 그것은 얼마 전 지훈을 납치해 XX 맨션으로 끌고 갔던 그 사람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 일이 도대체 뭔지, 무엇 때문에 일어났는지, 왜 그럴 수밖에 없었던 건지, 그것만이라도 누가 설명해 주었더라면, 조금은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을까.

“지훈아.”

잠시 그런 생각에 잠겨 있는 지훈을, 민현이 불렀다.

“이런 말을, 아직 어린 너한테 해도 되는지는 내가 잘 모르겠어. 그렇지만 지금으로서는 이 말을 할 사람이 너 뿐인 것도 사실이니까.”

그 말은 어쩐지 심각하게 들렸다. 지훈은 긴장한 표정으로 민현을 바라보았다.

“다니엘 잘 지켜봐.”
“...”

지훈은 저도 모르게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하필 이런 이야기를 하는 중에 다니엘을 잘 지켜보라는 말이 나오다니. 그 타이밍은 너무나 의미심장했다.

“무슨 뜻이세요?”
“내가 언젠가 말한 적이 있지. 다니엘의 상태는 일종의 시한폭탄이라고. 언제 어디서든 뻥 하고 터질 수 있다고.”

거기까지 말해 놓고, 민현은 가벼운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 그래. 집행관들은 누구나 다 비슷한 위험 속에서 일하고 있지. 근데 다니엘은, 뭐랄까. 조금 더 위태로워 보이는 구석이 분명히 있어.”

민현은 고개를 돌려 지훈을 바라보았다.

“전에, 다니엘 집에 안 들어왔던 날 기억나니.”
“네.”

말해 봐라. 내가 니까지 죽게 놔 뒀어야 되나.

그 끔찍한 밤이 지나고 다시 맞닥뜨린 시설의 상담실에서, 면전에 대놓고 살인자라고 악을 쓰는 자신에게 다니엘은 그렇게 말했었다. 냉정하다고도 할 수 없는, 지극히 무덤덤하고 사무적인 태도로. 그래서, 그런 줄로만 알았다. 괜찮은 듯 보여도 그게 꼭 그렇지만도 않을 거라는 말을 들어도, 그의 마음 속에는 그런 부분들에 대한 높고 견고한 방화벽이 몇 겹으로나 쳐져 있을 것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민현이 지금 말하려는 그 날, 다니엘은 지훈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내가 잘못했다, 라는 그 말을 남기고.

“그날, 분서장이 다니엘 조인트 깠다는 얘기 들었지.”
“네.”
“분서장이 왜 그랬을 거라고 생각해?”
“...”

지훈은 가만히 고개를 저었다. 그 이유가 잘 짐작이 가지 않았다. 지훈이 보는 성우는 소탈하고 권위적이지 않은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다니엘을 걷어차기까지 했다는 사실은, 지금까지도 사실 그다지 믿어지지 않는 부분이 분명 있었다.

“그 날 다니엘이, 집행 중에 손을 떨었대.”
“네?”

지훈은 저도 모르게 놀라 되물었다. 손을 떨다니. 그는 저도 모르게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다니엘이, 참 튼튼해. 내구성 좋고, 회복도 잘해. 웬만큼 깨져서는 눈도 깜짝 안 하는 녀석이지. 맞는데.”
“...”
“그렇다고 안 다치는 건 아니거든.”

민현은 지그시 입을 다물었다. 그러고는 한참 후에 지훈에게 물었다.

“세상에서 제일 단단한 물질이 뭔지 알아?”
“다이아몬드요.”
“그렇지. 다이아몬드. 근데, 단단하다는 게 두 가지 뜻이 있어. 흠집이 얼마나 잘 나지 않느냐 하는 뜻이기도 하고, 충격이 가해졌을 때 얼마나 잘 견디느냐 하는 뜻이기도 해. 전자는 경도, 후자는 강도라고 불러.”
“...”
“다이아몬드는 경도는 높지만 강도는 그다지 높지 않아. 그래서 다이아몬드의 표면을 뭔가로 긁어서 흠집을 내는 건 거의 불가능하지만, 망치 같은 걸로 때리면 정말 허무하게 깨져버리기도 해.”
“그 말씀은.”
“다니엘이, 좀 그래.”
“...”

민현의 그 말에, 심장이 철렁 떨어지는 느낌이 났다. 지훈은 저도 모르게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잘 지켜봐. 그리고 뭔가 이상한 낌새가 보이면 네가 할 수 있는 위로를 해 줘. 뭔가 이상한 것 같은데 하고 생각하다가도 형은 강하니까 그럴 리가 없지 하고 넘겨버리지 말라는 얘기야. 네 눈에 상처받은 걸로 보이면, 그건 정말로 상처받은 게 맞아. 아닐 거야 하고 넘겨버리지 말라는 이야기니까.”
“네.”

지훈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다니엘이 총을 쏘다가 손을 떨었다는 말은, 솔직히 아직도 잘 믿어지지 않았다. 그 말을 되씹는 지훈의 손 끝이 오히려 희미하게 떨리고 있었다.

“저기, 선생님.”

지훈은 입술을 달싹거리다가 물었다.

“분서장님은, 괜찮으세요?”
“...”

민현은 허를 찔린 듯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는 한참을 눈에 띄게 머뭇거리며 지훈의 말에 대한 대답을 하지 못했다.

“분서장은.”

민현의 대답은 한참이나 후에야 나왔다.

“다니엘하고는 또 좀 다른 스타일이긴 해. 다니엘이 다이아몬드라면 분서장은 얼음이랄까. 의외로 잘 깨지고, 잘 녹아. 그런데 모아서 내버려두면 물이 되고, 그걸 얼리면 다시 얼음이 돼. 그걸 그냥 몇 번이고 반복하는 거야. 한 번 깨지면 깊이 상처받는 다니엘하고는 좀 다르지.”
“분서장님은 참 좋으시겠어요.”

지훈은 어색하게 웃었다.

“선생님 같은 분이 옆에 계셔서.”
“무슨 말이야.”

민현은 피식 웃었다.

“그건 박 서기가, 내가 분서장 마음에 얼마나 많은 못을 박았는지를 몰라서 하는 말이고.”
“선생님은, 분서장님 면전에 대고 살인자, 라고 말해보신 적 있으세요?”
“...”
“저를 볼 때마다, 저한테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저한테 미안해 죽으면서, 그거 표도 제대로 못 내는 사람보고도 아무 것도 해 줄 수가 없지는 않으시잖아요.”

자신을 보는 다니엘의 기분이란 어떤 것일까 하는 것을 생각해 본 것은 그리 오래되지는 않았다. 자신이 죽여 없앤 사람들의 아들, 혹은 동생. 그런 인간이 자신의 눈 앞에 살아 존재하고 있는 것을 보는 그 기분이란, 얼마나 쓰고 아리고 매울 것인지를.

“저는 가끔요.”
“박 서기.”
“제가 살아있다는 거 자체가.”
“...”
“형한테 짐인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됐어.”

민현은 손을 뻗어 지훈의 손을 꽉 쥐었다.

“그만해.”
“선생님.”
“살아있는 게 죄인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아.”

민현의 목소리는 희미하게 떨리고 있었다.

“예외는 아냐. 다니엘도, 너도, 아니, 우리 전부가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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