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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성][녤윙] Ruhemann's Purple 102

19. Jack the Ripper 1

IMS TFT는 물론 IMS의 방역을 위해 꾸려진 조직이었다. 그러나 가끔은 그 본래의 목적이 아닌 다른 이유 때문에 활동이 잠시 중지되는 상황이, 제법 드물지 않게 벌어졌다. 오늘도 그런 날들 중 하루였다.

“이거는 또 뭔 일인데요.”

입술에 문 담배를 위아래로 끄덕거리며 다니엘은 투덜거리듯 물었다.

“총기일시반납에 전원 면담? 어떤 놈이 또 사고 쳤습니까.”

총기란 매우 예민한 물건이어서, 원칙대로라면 총기는 항상 사무실 내 정해진 장소에 보관하고 집행 일정이 없을 때는 절대 옥외반출이 금지되고 있었다. 그러나 집행 후 바로 퇴근을 해버리는 경우도 있고 무엇보다도 미전이자들이 저지르는 린치에 대해 조직 차원에서의 이렇다 할 대응책이 없는 관계로 적지 않은 수의 집행관들이 총기를 소지하고 다니고 있었다. 지훈의 집을 무단으로 집행했을 때 다니엘이 쓴 시말서 중의 한 장은 그 부분에 대한 것도 있었다.

“뉴스 안 봤냐?”
“뉴스를 뭐한다고 봅니까. 집에 가서까지 머리 아플 거 뭐 있는데요.”
“참, 답다.”

성우는 피식 웃었다.

“어제 살인사건이 일어났는데.”
“예.”
“총상이었어.”
“아니 뭐 그렇다고 그게...”

무슨 말인가를 하려다 말고 다니엘은 입을 다물었다. 그는 미간을 찌푸린 채 성우를 돌아보았다.

“설마.”
“그래.”

성우는 짜증스레 혀를 찼다.

“‘일반적으로 잘 사용되지 않는 종류의 탄환’이었다고 한다. 공식적인 수사 발표로는 그래.”
“사제탄환이나 뭐 그렇다는 거는 아니겠지요.”
“대충 알아들으면서 뭘.”
“환장하겠네요.”

다니엘은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그래서 뭐, 총 일단 다 뺏아놓고 알리바이 조사라도 하겠다 그겁니까.”
“그것도 있고, 아마 강선 분석도 하겠지.”
“가지가지 하네요. 어차피 지급하기 전에 저거가 미리 등록 다 해놓잖아요. 그거 대조만 해보믄 되지.”
“가끔 머리 좋은 애들은 사람 죽이기 전에 강선 훼손하기도 하잖아.”
“그 지랄을 할 만큼 정성스레 미친 놈이 있다고요. 여사 일이 아니네요.”

담배를 입에 물고 말하는 통에 길게 자라난 담뱃재가 아래로 툭 하고 떨어졌다.

“월급이 많기를 하나 일이 편하기를 하나 이제 예비 살인범 취급까지 당하는 겁니까.”
“이렇게나 꼭꼭 숨기고 있는데 이런 일로 전모가 드러나면, 그건 무슨 난리겠냐.”

성우는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이왕 잡힌 거 빨리 면담하고 치워야지 뭐.”





“살인사건요?”

지훈이 눈을 커다랗게 뜨고 민현을 바라보았다.

“그러니까, 집행관님들 중 누군가가?”
“지금으로서는 그렇게 의심할 수 밖에 없는 거지.”

민현은 가만히 한숨을 내쉬었다.

“집행관들이 쓰는 총기는 겉보기는 일반 총기하고 같지만 변이체들을 상대하기 위해서 개량된 총이고, 그 총기를 견딜 수 있는 탄환만을 쓰니까. 범행현장에서 발견된 탄환이 그런 종류라니까, 이건 근거 없는 의심이라고 하기도 힘들어. 우리나라같이 아무나 총 들고 다닐 수 없는 나라에서는 더 그렇고.”
“이럴 때 윗분들이 하시는 말씀이 딱 있지요.”

우진은 투덜거렸다.

“그러게 총기 안 들고 다니고 비품고에 꼬박꼬박 반납하고 보고서 날마다 쓰믄 이럴 때 의심 안 받고 얼마나 좋냐고.”
“근데 그게 그럴 수가 없잖아.”
“그러니까요.”

우진은 피식 웃었다.

“화염방사기가 그래 크고 무겁지만 안했어도 내도 그거 그냥 갖고 댕겼을 겁니다. 아 마친 척 하고 그냥 차에 싣고 다닐까 하는 생각 드는 게 한 두 번이 아니거든요. 그거 하나 갖다놓을라고 꼬박꼬박 사무실 들어오는 거 얼마나 피곤한데.”
“그렇지.”

민현은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그런 규정들 이해 못할 건 아닌데, 일을 하라는 건지 말라는 건지 싶은 생각도 너무 자주 들고... 당장 이 난리 치느라 오늘 집행은 한 건도 못 한다는 거 아냐. 오늘 밀린 거 놔두면 알아서 없어지지도 않을 거고.”
“또 이번 주에 미친 듯이 야근하면서 다 때워야지요. 저거가 야근하는 거 아니다 그거지 뭐.”
“면담 끝나도 총을 돌려줘야 집행을 하러 나가지. 오늘은 또 본의 아니게 개점 휴업이겠네.”

지훈은 한참이나 눈치를 보다가 조심스레 물었다.

“그럼 범인 잡기 전까지는 총은 안 돌려주는 건가요?”
“총은 아마 강선 분석만 하고 돌려줄 거다.”
“강선이 뭔데요?”
“강선이 뭐냐믄.”

우진은 왼손의 네 번째 다섯 번째 손가락을 접어 총 모양을 만들어 보이고는 총신 부분에 해당하는 식지와 중지를 가리켰다.

“총 보믄, 이래 앞으로 길게 튀어나온 부분 있제. 총을 쏘믄, 탄환이 직선으로 튀어나오는 게 아니고, 그 안에서 뱅뱅 돌다가 튀어나간다. 그래야 탄이 날아가는 방향이 일정해지거든.”
“네.”
“그 과정에서 탄환에 특정한 흠집이 나는데, 그게 총마다 다 틀리다. 사람 지문처럼. 그거를 강선이라 한다.”
“아.”

지훈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그 자국을 보고 이게 어느 총에서 발사된 건지를 알 수 있는 거예요?”
“이론상으로는 그렇지.”

민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뭐, 뭐든지 다 그렇지만 그것도 조작은 가능하다.”
“어떻게요?”
“그 강선을 건드려서 변형을 시키믄 당연히 강선이 바뀌겠제.”

우진이 대답했다.

“집행관님들한테 지급되는 총기는 지급전에 다 강선흔을 등록해 놓기는 하는데, 그거를 그래 훼손해가 사람을 죽였으믄, 그것만 가지고는 알 수가 없으니까.”
“아, 그래서 총기를 다 걷어가서 다시 강선을 확인해 보는 거예요?”
“뭐 그런 거다.”

지훈은 한참이나 고개를 끄덕였다. 이 곳에서 오가는 이야기들은 얼마 전까지의 자신의 생활과는 너무나 동떨어진 것들이어서, 가끔은 당황스러울 때가 있었다.

“신기하다.”
“신기할 것도 쌨다.”

우진은 피식 웃었다.

“하기야 니도 이런 거는 알아놓으믄 좋기는 하다. 니가 직접 총 쏠 일이야 있겠냐마는, 비품 관리도 행정관 업무 중의 하나고 하니까.”

지훈은 새삼스럽게 작성중인 비품 목록을 들여다 보았다. 그 속에는 다니엘과 성우가 사용하는 총기 두 점도 분명히 등재돼 있었다. 단순히 총기라고만 쓰는 그 물건 속에는, 저런 복잡한 것들이 모두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그런데요.”

지훈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 사람을 죽였다는 집행관은, 왜 그랬을까요?”

말을 해놓고 보니 어딘가 어색한 질문이었다. 지훈은 허둥지둥 부연설명을 붙였다.

“아니 그러니까, 그렇잖아요. 사람을 죽이기까지나 했으면 어떻게든 안 들키려고 할 거 같은데, 이런 식으로 흔적이 다 남는다는 걸 모르지도 않았을 거 아니에요.”
“설마 모르고 그러진 않았을 거야.”

민현이 대답했다.

“둘 중 하나겠지. 그럴 수밖에 없었거나, 아니면.”
“...”
“그런 게 생각이 안 될 만큼 망가졌거나.”






+. 루히만 퍼플 제본 페이지를 오픈합니다. 아직은 아무것도 없는데, 잘 채워나갈게요.

http://imstftkr.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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