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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성][녤윙] Ruhemann's Purple 101

18. Mayday 5

돌아오는 차창 밖은 이미 밤이 내려 어두웠다. 집에 도착하면 못해도 새벽일 것 같았다. 그러나 뿌옇게 불빛이 번진 차창 밖이 의외로 운치 있어, 심심하지만은 않은 길이었다.

“그래서.”

오늘 있었던 일을 설명하는 지훈의 목소리에는 힘이 잔뜩 들어가 있었다.

“내가 핸드폰을 확 뺏어가지구.”
“...”
“행정안전부 5급 사무관 박지훈입니다, 그랬어.”
“돌았나.”

다니엘이 웃음을 터뜨렸다.

“믿더나. 목소리가 아 목소린데.”
“분서장님 코스프레 좀 했지.”
“왜 하필이믄 성우 형이고.”
“우리 분서에서 제일 어른이잖아.”
“생일은 황샘이 더 빠르다.”
“그래도.”

지훈은 콧잔등을 찡그렸다.

“황 선생님 목소리는 너무 나긋나긋하고 상냥해서 그런 상황에 위압감이 없지.”
“맞나.”
“사실 박 주사님 목소리가 딱 좋았을 거 같은데 내가 사투리를 잘 못해서.”
“내는.”
“형 목소리는 나만 알고 있어야지.”

지훈은 웃었다.

“괜히 형 목소리 냈다가 그 아줌마가 형한테 반하기라도 하면 어떡해.”
“오바한다.”
“진짠데.”

지훈은 샐쭉한 표정으로 입을 다물었다.

“메이데이는 나만 알 건데. 평생.”





그렇게 한참을 재잘거리다가, 지훈은 유리창에 머리를 댄 채 잠이 들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긴 방조제가 있었다. 그 갓길에 차를 세우고, 다니엘은 잠시 차에서 내렸다. 방조제 위에서 맞는 바람은 거셌다. 희뿌연 물안개를 헤치고 갈매기 몇 마리가 머리 위를 날고 있었다.

붙여 문 담배가 반쯤 타들어갈 때 쯤 전화가 걸려왔다. 우진이었다. 흘끗 뒤를 돌아 지훈이 아직도 자고 있는 것을 확인하고, 다니엘은 전화를 받았다.

“끝났나.”
[대충요.]
“대충은 뭐고. 기믄 기고 안 기믄 안 기지.”
[너무 깔끔하게 다 했다 하믄 그것도 정 없다 아입니까.]
“별 소리를 다 듣겠다.”

길게 담배 연기를 뱉어냈다. 희뿌연 연기는 역시나 희뿌연 공기에 섞여들어가 보이지 않게 되었다.

[퇴근하셨습니까. 집이겠네요.]
“밖이다.”
[이 시간까지 뭐하는데요. 데이트라도 합니까.]
“그냥 바람 쐬러 나왔다. 지훈이도 답답해 하는 거 같고.”
[어딘데요.]
“인천 근처다. 물 보러.”
[아.]

핸드폰 너머에서 우진은 피식 웃었다.

[부산 사람은 또 정기적으로 물 한 번씩 봐줘야 사는 거 같지요.]
“니도 그래 말할 줄 알았다.”

두 사람은 말없이 한참을 웃었다. 이제 본격적으로 어둠이 내린 밤을 먹은 바다는 검게 출렁이고 있었다. 그 모든 감정의 찌꺼기들을 다 삼켜버린 것처럼.

“오늘 지훈이 조난당했더라.”
[조난요? 서울 한 복판 어디서요.]
“니는 그런 생각 들 때 없나. 주변에 다 낯설고, 모르는 사람들 같고, 그런 거.”

한참동안이나 담배 필터를 씹다가, 다니엘은 말을 이었다.

“내는 그런 기분을 여기 와서 처음 느꼈는데.”
[...]
“임마 이거는, 이제 겨우 열아홉 살 먹는 게 벌써 느끼고 있더라.”
[몰랐습니까. 지훈이가 사무관님보다 정신연령이 높잖아요.]

말 끝에 우진은 웃음을 터뜨렸다. 다니엘도 따라 웃었다.

“오늘 임마 이거, 학교 다닐 때 친구 만난 모양이더라. 뭐, 이상한 기분 안 들었겠나.”
[그랬겠네요. 내가 어짜다가 여까지나 왔노 싶기도 했을 거 같고.]

우진은 수긍한다는 듯 대꾸했다.

[그래서, 그거 때문에 인천까지나 갔습니까.]
“뭐 그래 됐다.”

짜고 축축한 바람이 불어 뺨에 부딪혀왔다. 다니엘은 바람에 흩어지는 머리칼을 대충 쓸어올렸다.

“박 주사야.”
[예.]
“니는 조난 당하믄 메이데이 칠 사람 있나.”
[없을 거 같습니까.]
“있으믄 다행이고, 없으믄 빨리 만들어라.”

다니엘은 중얼거렸다.

“아무래도 없는 거 보다는 있는 게 안 낫겠나.”
[물가 가신 거 맞기는 맞는 갑습니다. 억수로 센치하네요.]

우진은 웃었다.

[개폼 대충 잡고 얼른 드가세요. 감기 듭니다.]

통화는 그렇게 끊어졌다.

다니엘은 통화가 끝난 핸드폰의 주소록을 뒤졌다. 그리고는 박지훈이라는 다소 딱딱한 이름으로 저장된 지훈의 핸드폰 번호를 찾아, 그 이름을 바꾸었다. mayday라고.




“뭐 대충, 그런 일 있었던 모양입니다.”
“그랬구나.”

민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였구나. 3학년 2반 21번 박지훈이라는 그 말은.

“근데요.”

“왜?”
“강 사무관님 표현이, 재미있네요. 사람들 사이에서 조난당한다는 거.”
“근데 되게 적절한 말이기도 하다. 어떤 건지 딱 알겠는데.”
“맞지요.”

우진은 피식 웃었다.

“암튼 가끔 생긴 거 안 맞게 청순가련하다니까요.”
“왜. 강 사무관 은근히 여려. 그래서 박 주사가 뭐라 그러면 그걸로 되게 오래 상처받아.”
“그거는 소녀 감성이 아이고 뒤끝이 길다 하는 건데요.”

어림없다는 투로 민현의 말에 대꾸한 우진은 한참을 머뭇거리다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사무관님.”
“응.”
“접때 그 공개 프로포즈는, 일회용입니까, 아입니까.”
“...”

민현은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입을 다물었다. 그 때 그 일은, 그랬다. 결국은 선택해 줄 수 없었던 성우에게 자신이 해 줄 수 있는 것이라고는 그런 공개적인 애정공세 뿐이었다. 그래서 반 강제로 지르듯 내뱉은 그 말은, 이제는 주워 담지도 못할 곳을 떠돌고 있었다.

“본청 새끼들 아직 스무 살도 안 먹은 아 가지고 찝적거린 거는 산 채로 씹어 먹어도 분이 안 풀리기는 하는데요.”
“...”
“딱 한 개 정상참작해 줄 거가, 사무관님하고 분서장님 삽질 하는 거 안 봐도 되는 거라서.”

우진은 가볍게 어깨를 으쓱거렸다.

“일회용이다 하믄, 저는 좀 실망인데요.”
“실망씩이나.”
“아니요. 진짜예요. 저는 두 분 중 한 사람이 죽을병이라도 걸리기 전에는 그 상황 안 끝날 줄 알았거든요.”

당황한 민현을 바라보며 우진은 히죽 웃었다.

“아까 전화 끊기 전에 강 사무관님이 그라던데요. 니는 조난당하믄 메이데이 보낼 사람 있냐고. 그 햄은 남이 그런 거 있든지 말든지 그게 뭐가 그래 궁금한가는 잘 모르겠는데.”
“...”
“사무관님도 분서장님도, 조난당했을 때 메이데이 칠 사람 하나쯤은 있는 게 안 좋겠습니까.”

우진은 보고서 정리가 끝난 데스크탑의 버튼을 눌러 전원을 끄며 말했다.

“이미 그런 사이신 거믄, 제가 주제넘었고요.”






+.제본 티저 사이트의 도메인이 변경되었습니다. http://imstftkr.org/ 입니다. 메일 주소와 같은 도메인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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