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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성][녤윙] Ruhemann's Purple 85

16. To Be or Not To Be 1

“요새 표정이 왜 그래 안 좋습니까.”


오늘은 집행과 집행 사이의 대기 시간이 매우 짧은 편이었다. 좀 지치는 감은 없지 않지만, 차라리 이 편이 나았다. 방역팀에 연락을 하고 뒤로 돌아 단내가 가시지 않은 집을 나와, 두 사람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커다랗게 숨을 한 번 들이쉬었다. 길가 담벼락에 기대 서서 담배 한 대를 나누어 피던 중, 다니엘은 문득 그렇게 물었다.


“결국 황 선배하고도 잘됐잖아요.”

“...”

“근데 형 요새 보믄, 황 선배하고 잘 된 게 아니고, 차인 거 같은 얼굴이거든.”

“...”

“왜요, 황 선배한테 그새 차였습니까. 잘 좀 하지.”

“한 가지만 묻자.”


성우는 담배를 입 끝으로 깨문 채 물었다.


“너는 요새, 황 선생 이상한 거 못 느끼냐?”

“...”


허를 찔린 다니엘은 뜨끔했다. 그것은 민현이 성우에게 대놓고 프로포즈 비슷한 고백을 해 버린 그날, 지훈과 나누었던 대화와 일맥상통하는 어떤 것이었다. 이상하다니, 도대체 뭐가 이상하냐고 묻는다면 딱히 할 말은 없었다. 그저 익숙하지 않은 어색함, 그게 전부였다. 그러나 가끔은 그런 본능적인 이질감이야말로 그 후에 오는 어떠한 사건의 전조라는 것을 다니엘은 경험으로 알았다.


“무슨요.”


그러나 그는 일단 그렇게 대답했다.


“뭐 사실은 나도 좀 황 선배 요새 오바한다고 생각하기는 했는데.”

“...”

“지훈이가 그라던데. 사람이 사람 좋아하는데 오바하는 게 어딨냐고.”


그것은, 엄밀히 말하면 사실이라기보다는 그렇게 믿고 싶은 바람이었다.


“지난 주말에 그 집행이, 좀 스펙타클하기는 했잖아요.”


다니엘은 고개를 돌리고 길게 담배 연기를 뱉아낸 다음 말했다.


“그날 지훈이도 먼저 치대던데.”

“...”

“황 선배도 좀 그런 기분 들었던 거 아닐까요.”


늘 나가서 위험에 부딪히는 쪽이었기 때문에, 뒤에 남아 그 뒷모습을 바라보는 사람의 기분이 어떨 것인가 하는 것은 별로 생각해 보지 못한 것이 사실이었다. 그리고 어쩌면, 그렇게 마냥 기다리는 거야말로 더 큰 지옥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지난 주말을 지나며 비로소 했었다.


민현 또한 그런 생각을 했다면, 아주 납득할 수 없는 일만도 아닌 게 아닐까.


“사람이 있지.”


그러나 성우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믿고 싶은 대로 믿으면 안 돼.”

“뭔 소린데요, 그거는.”

“뭔가 이상한 낌새가 드는데, 그 사실을 인정하기 싫어서 이럴 거다 저럴 거다 이유 갖다 만들어 붙이는 거 말이야. 그러다가 큰일 나는 거야. 세상 만사 전부 그래. 뭔가가 이상하면, 의심을 해야지.”

“...”


아 거 참, 왜 그렇게 어렵고 복잡하게 사느냐고 한 마디 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 자신 이미 성우의 의혹을 전혀 납득하지 못하는 상태가 아니었기에 다니엘은 그만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민현이 요새 이상해.”


성우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그건 내가 누구보다 잘 알아.”






“총무과 좀 다녀올게요.”

“총무과엔 왜?”

“지난 달 비품 수량이 목록이랑 좀 안 맞는다고 해서요.”


지훈은 데스크탑을 뒤져 문서 몇 건을 출력하며 대답했다.


“아마 주말 당직이나 다른 분서 보결 집행할 때 사용된 내역들이 몇 건 빠진 거 같아서 그거 확인만 좀 하면 될 거 같은데.”

“이야.”


우진이 피식 웃었다.


“이제 그런 거까지 한 방에 딱딱 캐치하고. 야무지다. 내보다 낫네.”

“에이.”


지훈은 그런 우진을 쳐다보며 웃었다.


“주사님이야 다른 일 하면서 하시니까 그렇죠. 저는 다른 거 하면서 이거 하라 그러면 못했을 거예요.”

“말도 이래 이쁘게 하고. 사회생활 잘하겠다.”

“뭐 이미 잘하고 있지 않나. 내가 보기엔 우리 분서에서 사회생활 제일 잘해, 박 서기가.”


민현이 웃으며 거들었다. 지훈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갔다 올게요. 뭐 더 시키실 일은 없으세요?”

“총무과 가는 길이믄, 서류폴더나 몇 개 좀 가져 온나. 한 군데 계속 철했더니 미어터질라 하네.”

“네.”


지훈은 고개를 꾸벅 숙여보이고는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두 사람은 한동안 말없이, 지훈의 뒷모습이 문 뒤로 사라지는 것을 물끄러미 쳐다보고만 있었다.


“요새 무슨 일 있습니까.”


한참만에야, 우진은 그렇게 떼어놓고 물었다. 모니터 위로 돌아가려던 민현의 눈이 다시금 우진에게로 붙박혔다.


“무슨 일이라니?”

“이를테면.”


우진은 빙빙 돌리지도 않고 대답했다.


“죽을병이라도 걸리셨다든가.”

“야.”


민현은 피식 웃었다. 그러나 그런 민현을 바라보는 우진의 표정은 엄숙하기까지 했다.


“속없는 척 하니까 진짜 속없는 줄 압니까.”

“박 주사.”

“분서장님 좋아하는 거요. 뭐 그럴 수 있지요. 사람이 사람 좋은데 뭐 이유 필요합니까.”

“...”

“그런데 있잖아요. 원래 황 사무관님 스타일은, 그거 대놓고 그래 말 안합니다. 그거 그렇게 대놓고 말해야 될 이유가, 뭐가 있는 거지요, 지금.”


거기까지 말해놓고, 우진은 입을 다물고 민현을 바라보았다.


“도대체 뭔 일인데요.”

“이유 같은 게 어딨어.”


민현은 웃으며 그런 우진을 외면했다.


“강 사무관이랑 박 서기 연애질하는 거 보니까, 나도 좀 그래보고 싶어서 그랬다 왜.”

“...”

“아니꼬워?”

“섭섭합니다.”


우진의 똑바른 눈이 민현의 얼굴을 향했다.


“내는, 티 안 났는가 몰라도 황 사무관님 억수로 많이 믿고 의지했는데, 사무관님은 안 그랬는갑지요.”

“박 주사.”

“너무 친한 사이에는 오히려 하기 힘든 말도 안 있습니까.”


우진은 무뚝뚝하게 덧붙였다.


“내는 뭐, 적당하다 아입니까. 막말로 황 사무관님이 좋아해서 마냥 잘 보이고만 싶은 사람도 아니고, 그렇다고 꼴보기 싫어 죽을 거 같은 사이도 아니고, 그래도 이 분서에서는 비교적 사무관님 애 덜 먹이는 편이고. 지훈이 같은 아도 아니고요.”

“...”

“뭔 일 있으믄, 얘기하세요. 사람이 할 말 속에 쌓아놓고 못하믄, 병 납니다.”

“...”


민현은 힘없이 마른침을 삼켰다. 고작 몇 마디 말이 오갔을 뿐인데, 그의 안색은 단번에 핼쓱하게 질렸다. 그는 얼른 대답할 말을 찾지 못하고 고개만 주억거렸다.


“할게.”


민현은 고개를 숙여 키보드를 쳐다보았다. 굳이 쳐다보고 싶어서라기보다는, 우진의 시선을 피하는 것이 목적이었지만.


“근데, 나중에.”

“사무관님.”

“지금은 아냐.”


민현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나중에. 나중에 할게.”

“알겠습니다.”


우진은 더 묻지도 않고 그렇게 대답했다.


“약속하신 겁니다. 저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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