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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성][녤윙] Ruhemann's Purple 83

15. 변이실패 4

다음날, 민현은 출근을 하지 않았다. 몸이 아파 집에서 쉬겠다는 전화 한 통이 걸려왔을 뿐이었다. 그 전화를 받은 사람은 지훈이었다.


“황 선생님 많이 아프신 걸까요.”

“황샘이라고 스트레스 안 받는 거는 아니니까.”


다니엘이 비어 있는 민현의 책상을 흘끔 넘겨다 보며 중얼거렸다.


“내는 가끔 황샘 하는 일 보고 집행을 뛰면 뛰지 저 짓은 못하겠다 생각 한 두 번 한 게 아니다.”

“학교 다닐 때 공부 안한 티 적당히 내지요.”

“그라는 니는.”

“내도 안 그렇다는 말은 안했습니다.”


우진은 웃었다. 다니엘도 따라 웃었다.


“연구관은 내근직이라서, 거는 뭐 편한가 그래 생각할 수도 있는데, 거도 눈치 보는 거 장난 아니다. 우리 황샘은 그런 거 워낙 관심 없는 사람이지만서도.”

“왜, 황 사무관님 동기들은 지금 거의 다 편한 자리로 옮겨갔다 아입니까. 현장 계속 뛰는 거는 거의 황 사무관님 뿐이라 하는 거 같던데.”

“최소한 시설에만 가도 이런저런 복잡한 일에 신경 안 써도 되긴 하지.”


‘연구자’들에게 날마다 사람이 다치고 가끔은 죽어나가는 현장은 그리 좋은 환경이라고는 할 수 없었다. 그래서 연차가 쌓인 연구관들은 무리를 해서라도 시설이나 본청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러다 보니 상주 연구관이 아예 없는 분서도 적지 않았다. 그래서 민현은 상주 연구관이 없는 다른 분서에서 날아오는 리포트들도 전부 관리하고 분석해야 했다.


“황 선생 그 성격에 말은 다 못해도 스트레스 엄청 받고 있을 건데. 그래도 잘 견딘다 생각했더니.”


성우가 씁쓸하게 중얼거렸다.


“지난 주말에, 너무 걱정 많이 하셔서 몸살 같은 거 나신 게 아닐까요.”


가만히 입을 다물고 눈치를 보고 있던 지훈이 조심스레 말했다.


“황 선생님 그 변이체 다섯 기 더 잡혔을 때 되게 많이 놀라셔 가지구. 저 선생님 그렇게 당황하시는 거 처음 봤거든요.”

“그거는 황 사무관님만 놀랜 게 아니고 우리 다 놀랬다.”


그러나 그렇게 말해놓고, 우진조차도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래도 황 사무관님이, 딴 사람도 아니고 니 앞에서 그래 놀랠 티 많이 내실 분은 아닌데.”






“형.”


언제나와 같은 집행 대기 시간, 차 속에 앉아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던 다니엘이 불쑥 성우에게 그렇게 물었다.


“황 선배요.”

“응.”

“뭐 둘이 싸웠거나, 그런 거는 아니죠.”

“뭐가.”


성우는 어이가 없다는 얼굴로 다니엘을 돌아보았다.


“내가 황 선생이랑 싸울 일이 뭐가 있냐? 나는 내 일 하고 자기는 자기 일 하는데.”

“그런 거 말고요.”


다니엘이 답답하다는 듯 성우를 돌아보았다.


“지난 주말에, 그냥 그러고 넘어갔어요?”

“주말에 뭐.”

“지훈이가 그라던데요. 황 선배가 형 걱정 엄청 많이 했다고. 아까 사무실에서도 안 그러대요. 황 선배 그래 놀래는 거 지는 처음 봤다고.”

“...”

“그게, 뭐, 박 주사나 내 걱정 때문에 그랬겠어요.”

“말 이상하게 하네.”


성우는 지그시 미간을 찌푸리고 다니엘을 돌아보았다.


“너나 박 주사 걱정을 왜 안해, 황 선생이.”

“에이, 또 못 알아듣는 척 한다.”


다니엘은 딱 소리가 나도록 혀를 찼다. 그 서슬에 성우는 머쓱해진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 돌콩만한 머스마 눈에도 그래 보였다는데, 그라믄.”

“...”


성우는 귀찮다는 듯 손을 내저었다. 그러나 다니엘은 이미 뭔가 눈치를 챈 것 같았다.


“뭔 일 있었지요.”

“뭐가.”

“에이.”

“그만 해라.”

“뭔 일 있었지요. 맞지요. 내가 딱 보믄 아는데.”

“야이 씨.”


결국 성우는 버럭 짜증을 내며 다니엘을 돌아보았다.


“내가 황 선생 좋아한지가 몇 년인데, 좀 그러면, 안 되냐?”

“...”


다니엘은 입을 꼭 다물고 흘끔 성우를 쳐다보았다. 그 얼굴에 슬그머니 미소가 돌았다. 결국 제 입으로 실토해버린 셈이 된 성우는 몇 번 헛기침을 하며 고개를 돌렸다.


“누가 안 된대요?”

“...”

“잘했어요. 진짜 잘했어요.”


다니엘은 고개를 끄덕이며, 숫제 박수를 몇 번 치기까지 했다.


“말이야 바른 말이지 옆에서 보면서 속 터져 죽을 뻔 한 적이 한 두 번이었어야 어쩌지.”

“뭐 임마.”

“내 싫다는 사람한테 억지로 그런 것도 아니고, 둘이 그냥 접지불량이었던 거잖아요. 잘 됐네.”


다니엘은 미소를 지었다.


“이따가 퇴근하고 황 선배 집에나 한 번 가보세요.”

“...”

“사람이 혼자 살 때 아프믄 그거같이 서러운 게 없어요. 형도 알잖아요.”






딱히 아픈 곳은 없었다. 그저 아무도 보고 싶지 않을 뿐이었다. 아무도 볼 자신이 없을 뿐이었다.


민현은 맥이 풀린 손으로, 아침에 내려놓은 커피 한 잔을 따라 마셨다. 오늘 하루 종일 아무 것도 먹지 않은 빈 속에, 커피만 물 마시듯 계속 마시고 있었다. 내린지 오래 지난 커피에서는 살짝 탄 맛이 났다. 그러나 설탕이나 시럽을 타고 싶은 마음조차도 들지 않았다.


한 숨 자고 일어나면 이게 다 꿈이지 않을까 하는 어린애 같은 생각을 했었다. 그러나 아무 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잠들었다 깨어난 현실 속에서, 어제 들은 그 끔찍한 말들은 벗어날 수 없는 덫처럼 그의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나는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그 때 밖에서 벨이 울렸다.


민현은 반사적으로 몸을 웅크렸다. 그 벨 소리가 고막을 쪼개고 들어오는 것 같았다. 초인종 소리의 그 쨍쨍한 파장이 이렇게나 부담스럽게 느껴진 것은 오늘이 처음이었다.


“황 선생.”


문 밖에서 누군가가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성우였다.


“안에 있어?”

“...”


민현은 입을 꾹 다물었다.


두터운 현관문 바깥의 일이었다. 자신이 여기 있는지 없는지 그가 알 도리는 없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들킬까 두려웠다. 민현은 들었던 커피잔을 탁자에 놓고, 숨까지 죽였다.


혹시나, 그 일이 생기기 전이었다면 이렇게 괴롭지는 않아도 되었을까.


두렵다. 그 감정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지난 주말, 그 끔찍한 시간 동안, 민현은 한 가지 사실을 더 깨달아버렸다. 성우는, 그는 언제든 그의 눈 앞에서 사라져 버릴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그가 그렇게 사라져 버렸을 때, 자신의 두려움 때문에 받아주지 못한 그 마음은 몇 배나 더 거대하고 아프게 자신의 부실한 심장을 찔러올 것이라는 것을.


그래서, 허락했다. 그 마음을. 정작 몇 년 동안이나 뱉아 놓은 제 마음을 강요 한 번 하지 않던 그는 되레 얼굴을 붉히며 무리하지 않아도 된다고, 너무 애쓰지 않아도 된다고 고개를 저었다. 고개를 젓는 그 모습이, 한 발 뒤로 물러나는 그 발걸음이 되레 애처로워, 제가 먼저 그 몸을 끌어안고 그 어깨에 이마를 대었다. 언제까지 그렇게, 날 봐주기만 할 거냐고, 그렇게 물었던 것 같다.


그랬는데.

겨우, 그랬는데.


순간 핸드폰에서 진동음이 울렸다.


[집에 와봤는데 없는 건지 자는 건지 벨 눌러도 대답이 없네. 나중에 보면 전화라도 좀 줘. 걱정된다.]

“...”


민현은 물끄러미 그 메시지를 바라보았다. 동료가 보낸 건지, 사랑하는 사람이 보낸 건지, 그 언저리에 아슬아슬하게 걸친 그 문구를.


그리고 그 순간, 한 통의 메시지가 더 들어왔다.


[하루 안 봤는데도 되게 보고 싶네.]

“...”


순간,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아 민현은 핸드폰을 떨어뜨리듯 내려놓고 눈을 감아버렸다.


미안해.

그런데, 나 도저히 네 얼굴을 못 보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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