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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성][녤윙] Ruhemann's Purple 78

14. no signal 3

한밤의 어둠이 내린 밖은 캄캄해, 한 겹 유리창은 어둠에 먹혀 차라리 없는 듯이도 보였다.


다니엘은 지훈의 허리를 끌어안고, 그 목줄기와 목덜미에 차례로 입을 맞추고 핥았다. 마냥 부드럽지는 않은 키스여서 더러는 이를 세워 물기도 했고 더러는 눈 앞이 아찔할 만큼 세게 빨기도 했다. 그의 그런 자극에, 아직 소년 티를 채 다 벗지 못한 몸은 가늘게 흔들렸다.


다리에 힘이 풀려 연방 주저앉을 것 같았다. 지훈은 떨리는 손으로 유리창을 짚었다. 그런 지훈의 손등 위로, 다니엘의 커다란 손이 소리 없이 덮혔다. 손가락 사이사이를 파고들어 지훈의 손을 얽어잡는 그 아귀에 지그시 힘이 들어갔다.


지훈은 무너지듯 유리창에 이마를 기대고 고개를 숙였다. 제대로 된 신음도 아닌 숨이 넘어가는 소리만이 거푸 입 밖으로 새어 나왔다. 등 뒤에서 자신을 끌어안은 다니엘의 손 끝이 잔뜩 예민해진 가슴 언저리를 스쳤다. 턱이 들리고 고개가 뒤로 젖혀졌다. 창틀을 붙든 손마디에 힘이 들어가 하얗게 질렸다.


“형.”


숨이 달뜬 호흡을 몰아쉬며 지훈은 다니엘을 불렀다.


“나, 형 이름 불러도 돼?”

“이름?”

“다니엘, 하고.”


다음 순간, 그는 몸을 앞으로 숙여 발갛게 달아오른 지훈의 귓바퀴에 입을 맞추고 그 속을 살짝 핥았다. 어깨로, 등으로 소름이 돋았다.


“니 마음대로 해라.”


그는 속삭였다.


“어차피 내 거는 다 니 거다.”

“...”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지훈은 고개를 틀어 다니엘의 입술에 짧게 입을 맞추었다.


“다니엘.”


다니엘의 입술에서는 조금 전 자신이 바른 립밤의 민트 맛이 났다.


“날 예뻐해 줘.”


좀 더 야살스러운 말을 하고 싶었다. 좀 더 섹시한 말을, 좀 더 사람을 끓게 만드는 말을 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 순간 지훈의 머리 속에 떠오른 것은 고작 그 말 뿐이었다.


“알았다.”


다니엘은 조금 전 자신에게 입을 맞춘 지훈의 입에 다시 입을 맞추었다.


“예뻐해 주께.”


다니엘은 지훈의 몸을 거칠게 끌어안고 바싹 몸을 붙였다. 눈 앞이 어지러웠다. 제 심장이 뛰는 소리가 제 귀에까지 들렸다. 온 몸이, 온 정신이 흔적도 없이 녹아 사라져버릴 것 같았다.


베란다의 유리창이 지훈의 호흡에 쓸려 희뿌옇게 흐려졌다.






지훈은 거실 소파에서, 다니엘의 무릎을 베고 누워 있었다.


아까 어설프게 한숨 자 버린 탓일까, 몸은 피곤을 호소하는데 그다지 잠이 오지 않았다. 지훈은 그냥 눈을 감은 채, 제 머리칼을 쓸어넘기는 다니엘의 손 끝을 느끼고 있었다. 잠이 올 듯 올 듯 하면서도 오지 않는, 그 아슬아슬한 감을.


“형.”


다니엘은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흘끗 자신을 내려다보는 그의 시선에서, 그가 자신의 말을 듣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옛날 얘기 해 줘.”

“뭔 옛날 얘기.”


되묻는 목소리 끝이 웃음에 묻혔다.


“떡 하나 주믄 안 잡아먹지 이런 이야기?”

“그런 거 말고.”


지훈은 꼼지락거려 돌아누웠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다니엘을 바라보았다.


“형 얘기.”

“내 얘기?”

“응.”


불을 켜지 않아, 거실 안의 광원이라고는 열어놓은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바깥의 흐릿한 불빛 뿐이었다. 그래도 내 눈 앞에 있는 사람이 어떤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가 하는 것을 알아보는 데는 충분했다.


“나 형이 어떻게 살아온 사람인지 이런 거 하나도 몰라.”

“그런 거 뭐, 알아야 되나.”

“알면 좋잖아.”


사람이란, 사람의 인연이란 참 알 수 없는 것이라고 지훈은 생각했다. 불과 얼마 전까지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지 알지도 못했던 사람과 이런 사이가 된다는 것이.


“나야 뭐, 그냥 집에서 주는 밥 먹고 학교나 다니던 고딩이었는데, 형은 어쩌다가 이런 일 하게 됐는지, 그런 것도 궁금하고.”

“경찰이었다.”


다니엘은 떼어놓고 그렇게 대답했다. 지훈은 눈을 깜박이며 그런 그를 올려다 보았다.


“짭새였구나.”

“임마.”


말은 그렇게 해 놓고도 다니엘은 웃음을 터뜨렸다. 지훈도 따라 웃었다. 다니엘은 손을 뻗어 제 무릎을 베고 누운 지훈의 이마 가운데를 긴 손가락 끝으로 톡 튕겼다.


“경찰이라도 보통 수사하러 다니고 그런 거는 아니었고.”

“그럼?”

“드라마나 영화 같은 거 보믄, 인질극이나 그런 일 터졌을 때 시커멓게 옷 입고 건너편 건물 옥상에서 레이저 포인터 비추면서 저격하고 그라는 사람들 있제. 그런 일이었다.”

“근데.”


이왕 장난스러워진 것, 좀 더 장난이나 쳐 볼 생각으로 지훈은 웃으며 물었다.


“드라마나 영화 보면 그런 사람들 진짜 하는 일 없던데.”

“혼난다.”


다시금 다니엘의 손가락이 이마에 닿자, 지훈은 몸을 움츠리며 엄살스레 손을 내저었다.


“근데 그런 거 하다가, 어떻게 이 쪽으로 왔어요?”

“TFT에 있는 사람 중에 신입은 거의 없다. 신입이 할 만한 일도 아니고. 다른 사람들도 다 다른 데서 다른 일 하다가 이리 뽑혀 온 사람들이다. 우리 분서 사람들도 그렇고.”


다니엘은 조용히 대답했다.


“한 번은 어떤 가정집에 사람들이 인질로 잡혔다 하는 신고가 들어와서 그거 진압하러 나간 적이 있었다. 늘 하던 대로 진입로 확보하고 들어갔는데, 사람은 하나도 없고 사람만한 벌만 한 다섯 마리가 허공에 떠 있대. 생전 그런 거는 처음 봐서, 전부 다 멍하게 허공만 쳐다봤다.”

“...”

“내나 성우 형 쓰는 총은, 보기에는 보통 총하고 같은데 나름 IMS 집행용으로 개량된 총이다. 보통 사람 상대하는 총 화력 가지고는 변이체들 상대하기 힘들다. 그런데 그 때 우리는 세상에 그런 게 있다는 것도 몰랐고, 총도 보통 쓰던 거 가지고 들어갔으니까.”

“...”


지훈은 저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렸다. 웬지 괜한 말을 물었나 하는 생각에 뒤통수가 뜨끔해왔다.


“그 때 같이 나갔던 팀원들 전멸하고, 내만 살았다.”

“...”

“죽은 팀원들 시체 뒤져서 탄창 꺼내서, 그 탄창으로 갈아가면서, 진짜 미친 듯이 난사해서, 겨우 다섯 기 다 잡았다. 혼자서. 어디를 어떻게 맞춰야 되는지도 모르니까 그냥 냅다 갈겼다. 지금 하는 집행 힘들다 힘들다 해도, 그 때 생각하면 배 불러 터진 거지. 지금은 장비도 좋고, 성우 형도 있고.”


다니엘의 손 끝이 지훈의 머리칼을 쓸어 넘겼다.


“그 일 있고, 한 일주일 정신이 나가 있었다. 이게 도대체 뭔 일이고 싶은 생각밖에 안 들더라. 더 기가 막힌 거는, 정신 좀 차리고 나가 봤더니 그 때 죽은 우리 팀원들은 시체도 없더라. 어디다 어떻게 장사지냈는지, 그런 것도 아무도 모르고.”

“...”


지훈은 저도 모르게 입술을 달싹거렸다. 우진에게서 변이자들의 시신을 어떻게 처리하는지에 대해 듣고 한동안 멍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자신이 겪은 모든 일들은, 이미 다니엘이 몇 년 전에 다 겪은 일이었다. 그래서였을까. 그가 자신에게 곁을 내어 준 것은.


“병원으로 대장님이 찾아왔더라. 하는 말이, 누가 와서 뭔 말을 물어도 절대로 내가 본 거 말하믄 안 된다고 하대. 그 다음 날인가, 팀장님 사모님이 찾아왔다. 내보고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고, 우리 애 아버지 어디 있냐고 울면서 묻는데, 결국은 아무 말도 못했다. 죄송하다는 말 밖에.”

“...”

“그러다가 성우 형 만났다. 그 때 IMS 이야기도 처음 들었고. 그거 막는 일이라길래, 두 번도 안 듣고 무조건 한다 했다. 그래서 지금 이래 살고 있다.”


다니엘은 몸을 숙여, 지훈의 이마에 살짝 입을 맞추었다.


“니도 만났고.”

“그렇구나.”


지훈은 망연히 입을 다물었다. 나는 왜, 이런 것을 물었을까. 이 일에 관련된 상처는 오직 나만이 갖고 있다고, 그렇게 믿기라도 했던 것일까. 어째서 나는, 이런 아픈 이야기를 기어이 제 입으로 꺼내게 만들었을까.


“미안.”

“뭐가.”

“아픈 얘기 물어봐서.”


울컥, 목소리가 흔들렸다.


“나는, 나는 그냥.”

“물어봐 줘서 고맙다.”


다니엘은 그러나, 그렇게 말했다.


“잘한 일이 아니라서 어디다 말하고 다닐 수도 없고, 그 사정 다 아는 성우 형은 다 아니까 안 물어보고.”

“...”

“내한테도 이런 일 있었어요, 하고 누구한테라도 말하고 싶어도, 아무도 안 물어보니까 말할 데가 없더라.”

“...”

“이 일 왜 하게 됐냐고 물어본 거 니가 처음이고, 내 입으로 이 이야기 남한테 하는 거도 니가 처음이다.”


지훈은 몸을 일으켜 일어나 앉았다. 다니엘은 그런 지훈의 뺨을 가만히 쓰다듬었다.


“니가 얼마나 아프고 힘든지, 내가 다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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