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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성][녤윙] Ruhemann's Purple 74

13. Burn It Up 7

[교신 끊습니다. 기도나 많이 해주세요.]


그 말을 끝으로, 짧은 하울링을 남기고 교신은 끊어졌다.

민현은 낮은 신음을 뱉으며 머리를 감싸 쥐었다. 그리고 그걸로는 충분하지 못했던지 책상에 이마를 대고 엎드렸다. 몸을 웅크린 그의 어깨가 가쁘게 들먹거렸다.


“저렇게 놔 둘 게 아니었어.”


그는 신음하듯 중얼거렸다.


“무슨 짓을 해서라도 못 나가게 했어야 했는데...”

“...”

“어떻게, 어떻게 이렇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이렇게 까마득하게...”

“선생님.”


보다 못한 지훈이 곁으로 다가서 민현을 불렀다. 그러나 민현은 대답을 하지 않았다.


“선생님.”

“...”

“선생님...”


민현을 부르는 목소리 끝이 흐릿하게 흔들렸다.


오히려, 지금이 가장 타격이 컸다. 겨우 사람 세 명이서 600평이나 되는 공장을 집행방역해야 한다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보다도, 육각형 구조물 이야기를 들었을 때보다도, 여왕벌 이야기를 들었을 때보다도, 다섯 기 정도의 변이체가 추가로 날아오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보다도, 민현이 냉정을 잃은 모습을 보고 있는 지금이 가장 두려웠다. 지훈은 저도 모르게 입술을 깨물었다.


“어, 그래.”


한참만에 민현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의 눈자위는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그는 초조하게 손톱을 물어뜯었다. 평소의 차분함이 순식간에 사라져버린 민현은 낯선 사람 같았다.


“그래. 진정하자. 진정. 진정.”


민현은 중얼거렸다. 그 말은 지훈에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하는 말처럼 들렸다. 지훈은 찬물 두 잔을 따라 한 잔을 민현에게 갖다 주었다. 그 물 반 잔 가까이를 단숨에 마시고, 민현은 찰싹 소리가 나도록 스스로의 뺨을 몇 번 두드렸다. 그리고는 다시 모니터 앞에 앉았다.


민현이 잠깐 멍해져 있는 동안에도 스캔 데이터는 계속 갱신되고 있었다. 변이체들이 아주 느리게 움직이고 있는 궤적이 모니터에 뚜렷하게 표시되었다. 민현은 눈에 힘을 주고 그 모니터 언저리를 노려보았다.


“상황이 많이 안 좋은 거죠.”


지훈이 조심스레 물었다. 이런 것을 물어도 되는지 어떤지 확신은 없었지만, 민현을 생각해 입을 다물고 가만히 있기에는 자신의 흔들리는 마음을 추스르는 것도 너무 힘이 들었다.


“응. 아주 좋지 않아.”


민현의 목소리가 흐릿하게 떨리고 있었다.


“사람 둘이서 변이체 다섯을 상대한다는 것만으로도 벅찬데 여왕벌도 있고, 다섯 기가 더 오고 있기까지 하니까. 지금으로서는 박 주사가 시도해 보겠다는 그 방법에 기대를 걸 수밖에 없어.”

“박 주사님은 정확히 뭘 하시겠다는 건데요?”

“벌은 전파에 예민해. 그래서 핸드폰 기지국의 전자파 때문에 근처의 양봉 벌들이 몰살당한 사례가 예전부터 자주 보고된 적이 있었어.”


민현은 노트북으로 인트라넷을 다시 검색해 관련 문건들을 찾기 시작했다.


“박 주사는 지금 그 기지국 역할을 할 수 있는 드론을 공장 상공에 띄워서 그 전자파를 가지고 몰려드는 변이체들을 쫓거나, 행동불능으로 만들겠다는 생각인 거야. 변이체들의 전파 때문에 인이어 통신이 전파간섭을 받는 일이 종종 있는데, 역으로 그걸 변이체한테 시도하겠다는 거지. 손톱으로 칠판 긁는 소리 같은 걸 아주 크게 들려주면 사람도 반사적으로 귀를 틀어막고 웅크리겠지? 그런 걸 노리는 거야.”

“그런 게 현실적으로 가능해요?”

“이론상은 가능해. 아니, 꽤 좋은 생각이지.”


민현은 반 잔쯤 남은 물을 다시 벌컥 들이켰다. 어지간히 속이 타는 것 같았다. 지훈은 말없이 비어버린 그 잔에 다시 물을 가득 따라서 민현에게 건네주었다.


“주변에 다른 시설이나 인가가 밀집한 지역이면 힘들겠지만, 저기는 외진 데다가 주변에 아무 것도 없으니까. 드론으로 커버할 정도의 거리 안에 전파 방해를 받는 다른 뭔가가 없으니 충분히 해 볼 만한 생각이지.”


그래도 조금은 차분해진 목소리로, 민현은 말을 이었다.


“다만 관건은, 변이체에게 전자파 재밍이 어느 정도 먹힐 것인가 하는 거야.”

“...”

“박 주사가 노리는 대로 행동불능까지만 갈 수 있다면 나머지는 어떻게든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선생님!”


지훈은 손가락으로 모니터를 가리켰다.


“변이체 하나가 줄었어요!”


민현은 모니터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공장 내에 점멸하던 붉은 점 하나가 사라지고, 네 개가 남아 있었다. 두 사람은 잠시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그 모니터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렇구나.”


민현은 멍하니 스캔 데이터가 들어오는 모니터를 바라보았다. 잠시 지훈이 곁에 있다는 사실 자체를 잊어버린 듯, 그는 손 끝으로 모니터의 붉은 점 언저리를 쓸었다. 뭔가를 쓰다듬기라도 하려는 것처럼.


“싸우고 있는 거구나. 계속. 어떻게든.”


민현의 손 끝이 희미하게 떨리는 것을, 지훈은 분명히 보았다.


“일단 지켜보자.”


그는 가만히 숨을 한 번 몰아쉬었다.


“지금으로서는 외근조의 판단을 믿을 수밖에 없어.”






우진은 핸드폰 알람을 맞추었다. 5분, 10분, 15분 20분, 30분. 총 다섯 개였다.


드론이 작동 가능한 시간은 대략 30분 정도였다. 그 말인 즉, 자그마치 600평이나 되는 이 공장을 완전히 폭파할 수 있을 만큼의 TNT를 매설하고 기폭장치를 설치하는 데 소모할 수 있는 시간이 고작 30분 남짓이라는 이야기였다. 게다가 그 와중에 이 쪽으로 날아들고 있는 변이체들이 충분히 가까이 오지 않았을 때 재밍을 시작하면 변이체들이 도망쳐 버릴 수도 있으므로 충분히 이 공장 근처로 가까이 오는 타이밍을 재야 했다. 이 모든 것을 혼자서 다 해야 한다는 사실이 화룡점정이었다.


우진은 미리 체크해 둔 공장의 도면을 한 번 훑어보고 트렁크에서 TNT를 꺼내 매설을 시작했다. 원래라면 TNT 제거를 방지하기 위해 지뢰 등의 보조 폭약도 함께 깔아야 했지만 이 일은 그럴 필요가 없는 것이 불행 중 다행이었다. 특별히 폭약을 숨겨야 할 필요가 없어 땅을 파고 매설하는 과정을 거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까지도.


10분 째의 알람이 울리고 조금 더 시간이 지날 무렵, 저 쪽 하늘에서 이 편으로 날아오는 변이체들의 기척이 보였다. 우진은 그 변이체들이 공장 인근으로 모여들어 선회비행을 두어 차례 하는 것을 확인하고 상공에 띄운 드론을 작동시켰다. 꽤나 일사불란하던 변이체들의 비행하는 패턴이 점차 흐트러졌다. 고도는 낮아지고, 대형은 부산해졌다. 그리고, 하나씩 하나씩 바닥에 떨어져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독한 살충제라도 맞은 것처럼.


시간이 없었다. 공장 둘레를 빙 돌아 TNT를 설치했다. 15분 째의 알람이 울릴 무렵, 성우와 다니엘이 공장 밖으로 나왔다. 두 사람은 밖으로 나오자마자 공장 외벽에 등을 기댔다. 헐떡거리는 숨소리가 여기까지 들렸다.


“욕보셨습니다.”

“뭐 도와줄 거 없냐?”

“숨이나 돌리고, 얼른 가서 차에 시동이나 거세요. 뻘한 거 잘못 건드리면 오늘 다 죽습니다.”


피복을 벗긴 전선을 연결하고 케이블 타이로 묶으며 우진은 말했다.


“남는 총알 있으믄, 저 떨어진 놈들이나 한 발씩 쏴주세요. 지금 행동불능이라서 날아다니는 놈들보다는 훨씬 상대하기 쉬울 겁니다.”


다니엘이 성우에게 손을 내밀었다. 성우가 건네주는 총을 받은 다니엘은 제 총과 성우의 총까지 다 써서 바닥에 떨어진 채 꿈틀거리는 변이체들의 숨을 끊었다. 마지막 총성이 울리고, 다니엘 또한 천천히 그 자리에 주저앉아 긴 한숨을 내쉬었다. 그로서도 매우 무리한 진행이었다.


“여왕벌은요.”

“사살했다.”

“누가 하셨는데요.”

“내가.”

“분서장님 월요일날 짤없이 시말서 추가네요.”

“도리 있냐?”


우진은 연결한 기폭 장치를 열린 문 틈으로 공장 중간쯤으로 던져 넣었다. 방사상 연쇄폭발 기전이었다. 공장 안의 중앙에 장치한 기폭 장치를 터뜨려 거미줄 모양의 연쇄 폭발로 공장과 인근의 부지 전체를 깔끔하게 날려버릴 생각이었다. 설치한 TNT의 양이 필요 이상으로 많다 싶은 마음이 들었지만, 오늘은 그런 것은 별로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안에 더 못 살펴보셨지요.”

“그럴 시간이 어데 있노. 니가 20분 안에 나오라 했다 아이가.”

“뭐 아까 확인한 것만 갖고도 보고서에 쓸 말은 차고 넘치니까 별 일 안 없겠습니까.”


마지막 전선을 마무리한 우진은 허리를 폈다.


“두 분, 먼저 출발하세요. 저는 기폭장치 걸고 갈게요.”


우진은 턱짓으로 등 뒤의 공장을 가리켰다.


“이 인근에 묻힌 TNT 양이 한 20키로 됩니다. 개오바지요. 진짜 지진이라도 온 수준으로 땅 흔들릴 겁니다. 뒤도 돌아보지 말고 냅다 내빼세요.”

“야, 니 혹시.”

“지금 뭔 생각하는지 모르겠는데, 여는 내한테 맡기고 먼저 가라 이런 멘트 내는 성질에 안 맞습니다.”


우진은 내뱉듯이 말했다.


“스위치 눌러놓고 폭발할 때까지 시간 한 3분 정도는 있어요. 두 분은 먼저 출발해서, 각자 생사보고해야 될 사람들한테 욕이나 먹고 계세요. 내는 뒷정리하고 갈 거니까.”

“괜찮겠냐?”

“내가 장담하는데 여 기폭하는 거보다 황 사무관님이나 지훈이한테 전화하는 게 더 위험할 건데요.”


우진은 싱긋 웃었다.


“지금 한 30분 넘게 교신 끊겨가지고, 내근조 아마 미치고 있을 겁니다. 욕들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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