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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성][녤윙] Ruhemann's Purple 71

13. Burn It Up 4

민현은 지훈에게 샘플영상 하나를 보여주었다. 검은 화면 안, 동심원 여러 개가 그려진 가운데 건물과 지형지물이 간단한 실선으로 표시되어 있고, 그 중 한 건물 안에 붉은 점 서너 개가 규칙적으로 깜빡이고 있었다.


“저기 붉은 점이, 변이개체야.”

“...”


지훈은 어쩐지 착잡한 기분으로, 느리게 움직이고 있는 붉은 점들을 바라보았다.


“열 스캔은 말 그대로, 생체의 체온을 탐지하는 거야. 좀 더 정확히는 45도 이상의, 비정상적으로 높은 체온을 보이는 생체만 탐지하는 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어.”

“그런데 그러면요, 변이체가 아닌 다른 생체도 같이 탐지되거나 하진 않아요?”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 정도로 체온이 높은 생체는 거의 없어.”


민현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변이체들은 사람이 비해서 체온이 10도 정도가 높아. 그래서 보통 46도에서 48도 정도의 체온을 유지하고 있어. 이 정도로 체온이 높은 동물은 흔하지 않아. 일반적인 포유류의 체온이 대략 사람과 비슷한 36도에서 39도 정도, 닭이나 가금류의 체온이 41도 전후야. 그러니까 얼추 변이체만 탐지된다고 봐도 크게 무리는 없어.”

“네.”


지훈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가 하는 일은 다른 게 아니라, 이 이상체온으로 감지된 개체들의 움직임을 저 쪽에 알려주는 거야.”


민현은 화면에 눈을 고정한 채 말을 이었다.


“변이한 개체들은 기본적으로 비행이 가능해. 물론, 날개가 지탱할 수 있는 무게에 비해 인간의 기본적인 체형 자체는 비행에 그다지 적합하지 않기 때문에 아무리 변이를 했다고 해도 진짜 벌들처럼 자유자재로, 빨리 날지는 못해. 그렇지만 어쨌든 비행 자체는 가능하기 때문에, 그 점에서 인간에게 불리한 건 사실이지.”

“...”

“그리고,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니까.”


그 말은 어쩐지 섬뜩한 울림을 가지고 있었다. 지훈은 천천히 고개를 돌려 민현을 바라보았다.


“그건 무슨 말씀이세요?”

“변이체들은 인간이기도 하면서, ‘벌’의 특성을 동시에 가지니까. 다른 곳에 있는 변이체들을 불러온다든가, 다른 곳에 있는 변이체들에게 일정한 신호를 보낸다든가 하는 행동이 가능할지도 몰라.”


민현은 가벼운 한숨을 내쉬며 팔짱을 낀 채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그리고 가장 끔찍한 가능성은 ‘번식’을 할지도 모른다는 거지.”

“번식...”


그러고 보니, 거기까지는 생각하지 못했다. 인간도 아니고 벌도 아닌 이 기묘한 생물은, 어떤 방식으로 자신의 종을 유지할까 하는 점에 대해서.


“생물이 존재하는 가장 큰 목적은 종의 존속이니까.”


민현은 중얼거렸다.


“지금까지는, 변이체들은 종을 존속시키는 방법을 인간에게 기생해서 인간을 변이시키는 방법밖에는 찾지 못한 것 같아. 그런데 이건 굉장히 비효율적이거든.”

“비효율적이요.”

“좀 정 없지? 그런데 그렇게밖에 설명이 안 되네.”


그는 딱하다는 듯 가만히 고개를 저었다.


“그렇잖아. 종을 유지하기 위해서, 일일이 인간에게 기생해서 변이를 일으킬 수 밖에 없다니. 매우 번거롭기도 하고, 변이가 실패하는 경우도 있으니까.”

“변이가 실패하기도 해요? 그런 일도 있었나요?”

“있었어. 지금까지 수집된 표본의 수가 너무 적어서 딱 이렇다, 저렇다 설명할 수는 없지만 변이는 실패하기도 해.”


민현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 변이체의 입장에서는 성공 가능성이 100%가 안 되는 기생보다는 자체적인 번식이 가능한 방법을 끊임없이 찾겠지. 그건 생물의 본능이야. 한낱 인간이 다 알기는 어려운, 일종의 섭리라고나 해야 맞는, 그런 거지.”


민현은 잠시 입을 다물고 샘플 영상을 바라보았다. 두 사람이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붉은 점들은 하나씩 사라져 종내에는 모두 없어졌다. 지훈 또한 민현의 시선을 따라, 붉은 점이 모두 사라져버린 검은 화면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열 탐지 데이터를 보면서 가장 주의해야 할 점은, 어쩌면 그거야.”


민현은 속삭이듯 말했다.


“번식의 징후를 찾는 것.”






“일단들 침착해.”


왕대인 것으로 추측되는 구조물이 발견되었다는 다니엘의 말에, 민현은 입을 다물어 버렸다. 그리고 순식간에 핏기가 가신 그 얼굴만 보고도 지훈은 뭔가 아주 큰일이 생겼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통상적으로, 벌 군집의 여왕벌 개체는 ‘태어나는’ 게 아니라 ‘만들어지는’ 거야. 그런 걸 생각해 보면, 지금 그 왕대 안에도 여왕벌 개체가 있을 가능성은 낮아. 그러니까 다들 진정해.”


그러나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민현은 인트라넷에 접속해 뭔가를 열심히 뒤지고 있었다. 그의 얼굴이 차갑게 굳어지고 있었다.


“일단 구조물을 좀 더 살펴봐 줘. 왕대 말고, 다른 방 안에 산란의 흔적이 있는지를 자세히 살펴봐 주고.”

[알았어.]

“그리고, 그쪽 언저리에 변이체 한 기 있는 거 잊지 마. 다른 데 정신 팔다가 놓치지 말고.”

[예.]


저도 모르게 이마 위로 식은땀이 배어 올라, 지훈은 저도 모르게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그 와중에도 스캔 영상은 계속 업데이트되고 있었다. 붉은 점들의 개수와 위치는 크게 변화가 없었다.


“선생님.”


민현을 부르는 지훈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여왕벌 정말 없는 거 확실해요?”

“여왕벌이 될 벌은 원래부터 정해져 있는 게 아니야. 수많은 유충 중에 특정한 유충에게 다른 벌들과는 다른 먹이를 먹여서 여왕벌로 키우는 거지.”


민현은 빠르게 인트라넷을 검색하며 지훈의 질문에 대답했다.


“그런 습성을 생각해 보면, 저 봉소 안에도 이미 여왕벌이 있을 가능성은 낮아.”

“그렇지만.”


지훈은 되물었다.


“왕대를 만들었다는 말은, 이제 여왕벌을 만들려는 준비를 끝냈다는 말이 되는 게 아닐까요.”

“그게 문제지.”


민현은 잘근잘근 입술을 깨물었다.


“왕대가 구축됐다는 말은 여왕벌로 기를 유충이 특정됐다는 말이거든. 그렇다는 건...”

[선배.]


그 때 채널 너머에서 다니엘의 목소리가 들렸다.


[일단 산란 흔적 같은 건 없어요. 그렇기는 한데.]


낮게 잠긴 그의 목소리는 의미심장하게 끊어졌다.


[여기 여러 가지로 수상해요.]

“뭐가?”

[일단, 이 공장 자체가 제당공장인 거 같거든요.]

“뭐?”


민현은 키보드에서 손을 떼고 스캔 화면을 다시 바라보았다.


“폐공장이라고 하지 않았어?”

[폐공장 맞기는 맞아요. 그런데 저 쪽 뒤에, 유통기한 지난 설탕이 한 수십 포대 쌓여 있는데.]

“...”

[몇 개는 쥐어뜯겨 있고요.]


뭐가 어떻게 되어가는 건지 모르는 지훈에게도, 지금의 불운한 공기는 뚜렷이 전달되어 왔다. 그러니까, 오늘 집행 나간 곳이 예전에 설탕을 만들던 공장이었고, 그 공장에 버려진 유통기한이 지난 설탕 수십 포대가 그 공장에 있는 변이체들의 먹이 노릇을 하고 있다는 말인 것으로, 별도의 설명을 듣지 않아도 거기까지는 어떻게 알아들을 수가 있었다.


“그럼, 거기 있는 변이체들은.”

[아마 이 공장 다니던 사람들이었겠지.]


성우가 대답했다.


[본 건물 뒤쪽에, 가건물 비슷하게 사택이 있는 것 같았어. 외진 동네니까, 그냥 평일엔 여기서 먹고 자고 하면서 일했고 주말쯤에나 퇴근한 것 같은데, 그 와중에 변이가 일어난 거지. 외부에서 이동한 변이체가 없는 걸로 보이는 게 불행 중 다행인데.]

[인적 드물고, 먹을 거 많고, 나름 타워 팰리스다 그거네요.]


빈정거리는 듯한 다니엘의 목소리가 귓전에 뚜렷하게 박혔다.


“이해를 못하겠네.”


민현은 신음하듯 중얼거렸다.


“도대체 본청에서는 무슨 생각으로 그런 데를, 우리 분서 단독으로 집행방역하라고 오더한 거지?”

[뭐 뻔한 거를, 그래 어렵게 생각합니까.]


다니엘은 피식 웃었다.


[되믄 좋고.]

“...”

[아니믄 말고.]






+. Ruhemann's Purple 트리비아 13.

11분서원들의 걸그룹 취향

성우 : 에이핑크

민현 : 레드벨벳

다니엘 : 트와이스

우진 : 블랙핑크

지훈 : 여자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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