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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성][녤윙] Ruhemann's Purple 70

13. Burn It Up 3

오늘 다니엘은 늘 입던 수트를 입지 않았다. 여기저기 포켓이 달린 카고팬츠에 헐렁한 청회색 맨투맨을 걸치고 머리칼은 왁스를 발라 뒤로 완전히 넘겼다. 패인 목둘레 안으로 은목걸이의 가느다란 체인이 흘끗 보였다. 그 모습은 일하러 간다기보다는 휴가철 보드라도 타러 가는 듯해서, 지훈은 한참이나 어안이 벙벙해진 얼굴로 그런 다니엘을 바라보았다.


“그러고 가요?”

“오늘은 뭐 누구 보는 사람도 없고.”


다니엘은 뭔가가 잔뜩 든 백팩을 어깨에 걸치며 말했다.


“솔직히 정장 입고 총질하는 거 불편하다. 신경도 쓰이고.”

“...”

“이상하나.”

“아니.”


지훈은 웃었다.


“멋있어서.”


다니엘은 피식 웃었다. 다음 순간, 그는 지훈을 끌어당겨 품에 꼭 껴안았다. 그에게서는 몸에 밴 듯한 건파우더 냄새가 났다.


“어떡하지.”


지훈은 중얼거렸다.


“형은 오늘 하루 종일 고생할 건데 난 아무 것도 못 해주네.”

“왜 하는 일이 없노. 황샘 잘 도와라.”

“내가 할 줄 아는 게 뭐가 있어서.”

“스캔 데이터는 순식간에 몇 장씩, 한꺼번에 로딩돼서 황샘이 아무리 똑똑해도 혼자서는 그거 다 못 본다. 황샘이 데이터 보는 거 기본적인 거는 가르쳐 줄 건데, 그거 듣고 니도 같이 데이터 봐야 될 거다.”


다니엘은 지훈의 머리칼을 쓰다듬었다.


“괜찮다, 꼬맹아. 금방 갔다 오께.”






문제의 공장은 야산의 한 중턱에 있었다.


어처구니없을 만큼 인적이 드문 곳에 자리잡은 그 공장은, 사용하지 않은지가 제법 된 듯 군데군데 칠이 벗겨지고 외벽에 자잘한 금이 가 있었다. 철제 셔터는 반쯤 녹이 슨 채 닫혀 있었고 그 주위로 녹물이 벽에 배어든 흔적들이 있었다. 건물 바깥으로는 낡아서 움직이기는커녕 제 형체를 유지하고 있는 게 장하다 싶은 지게차 두 대가 흙먼지를 잔뜩 뒤집어쓴 채 아무렇게나 서 있었다.


“실제로 보니까 더 어마어마하네요.”


우진은 허리를 젖혀 공장의 꼭대기 쪽을 올려다보았다.


“이거를 셋이서 다 훑어라 그 말인데.”

“진짜 욕나오네.”

“해봤자 안 바뀌는 생각은 넣어둬라.”


탄창을 점검하며 성우가 중얼거렸다.


“잠시 후, 오후 12시 정각에 집행 개시한다. 그렇게들 알고.”


성우는 귀에 걸린 인이어를 점검하고는 채널 너머의 민현에게 말을 걸었다.


“황 선생. 잘 들려?”

[응, 이상 없음.]

“스캔 데이터 확인했어?”

[지금 박 서기랑 같이 보고 있어.]


인적이 외진 곳이어서 걱정했지만 다행히 통신에는 큰 문제가 없었다. 다니엘과 성우도 각자 인이어의 상태와 교신 상태를 점검했다.


[일단 확인되는 것 다섯 기 맞아.]

“위치는.”

[입구 기준 11시 방향에 밀집이야. 한 기만 3시 쪽.]

“오케이.”


잠시 머뭇거리던 민현은, 성우가 아닌 외근조 모두를 향해 그렇게 말했다.


[다들 조심해.]

“수고.”


성우는 우진을 바라보았다.


“박 주사는.”

“저는 밖에서 방역 준비해야지요.”


우진은 들고 온 가방에서 이런저런 폭발물들을 꺼내 하나하나 점검하고 있었다.


“보통 쓰는 네이팜탄 가지고는 힘들 거 같아 가지고. 오늘은 출력 좀 높일까 싶습니다.”

“그래. 얼른 끝내고 집에 가자.”

“...”


그런 성우에게 무어라 말을 하려다 말고, 다니엘은 가만히 입을 다물었다. 그의 시선은 셔터문 근처에 멈추어 선 지게차에 박힌 문구를 향하고 있었다. XX제당(製糖)이라는.






3시의 한 기를 먼저 처치하고, 11시 방향의 밀집 지역으로 간다. 그것이 두 사람이 합의한 기본 동선이었다.


낯선 공간에 처음 진입하는 이 순간이 가장 힘들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얼음으로 가득찬 물에 강제로 내던져진 듯한 기분이 된다. 그 섬뜩함, 긴장감, 두려움까지를 한 고비 넘어야 비로소 시야가 트이고 눈 앞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꽤나 베테랑이라고 자부하는 다니엘에게도 이런 순간은 쉽지만은 않았다.


“3시 방향이면, 저긴가.”

“그래 보이네요.”


이렇게 넓은 공간에서 단독행동은 금물이었다. 두 사람은 천천히, 보폭을 맞추어 3시 방향 셔터문이 반쯤 열린 공간으로 향했다.


그러나 그 공간에서 그들을 맞은 것은, 변이체가 아니었다.


“이거 뭔데요.”


줄잡아 어지간한 건물 하나 정도의 너비가 되어 보이는 그 공간은, 육각형의 구조물로 가득했다. 바닥과 벽면, 천정까지 온통. 그 곳은 인간의 공간이라기보다는 거대한 벌집의 내부인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그 어느 때보다도 짙고 역겨운 단내 또한.


“황 선생.”


인이어에 대고 상황을 보고하는 성우의 목소리가 흐릿하게 떨렸다.


“여기 좀 이상한 게 있어.”

[뭐야.]

“육각형 모양의 구조물들이 잔뜩 있어. 바닥, 천정, 벽면까지 다닥다닥 붙어 있는데.”

[뭐라고요.]


공장 바깥에서 대기 중이던 우진의 목소리가 채널로 끼어들었다.


[분서장님, 제가 좀 봐도 되겠습니까.]

“그래. 여기 입구 기준 3시 방향에 있는 셔터문 반쯤 내려온 쪽이야. 조심해서 들어와.”

[알겠습니다. 지금 갑니다.]


다니엘은 입구가 보이는 쪽으로 이동해 허공으로 총을 겨누었다. 일단 비무장상태인 우진이 이 곳으로 들어올 때까지 엄호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입구로 들어온 우진은 다니엘을 알아보고, 반쯤은 뛰는 듯한 걸음으로 다가왔다.


“이거.”


안으로 들어와 구조물을 확인한 우진의 얼굴이 심각하게 굳어졌다.


“지난 번에, 방역하다가 떨어졌을 때요. 그 집에서 본 거하고 거의 비슷한데요.”

“그래?”

“그런데 이 쪽이 훨씬 규모가 커요. 그 집에서 본 거는 바닥밖에 없었는데, 여기는.”

[박 주사.]


인이어 너머로 민현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 방역 리포트는 나도 봤어. 그 집에서 확인한 헥사곤 구조물하고 비슷하단 말이야?]

“예, 그런 거 같습니다.”


우진은 발로 조심스럽게 육각형 구조물의 한 끝을 툭툭 걷어찼다.


“거의 동일합니다. 재원이나 강도도 비슷하고요. 아주 잘게 뜯은 나무 파편에 일종의 화학물질 처리가 되어 있는 거 같습니다. 가연성 굉장히 높아서, 불붙이면 이거 한꺼번에 다 탈 겁니다.”

[규모가 어느 정도야.]

“엄청난데요.”


우진은 대답했다.


“어림잡아도 몇 천개는 되지 싶은데.”

“이쪽에.”


다음 순간 두 사람은 다니엘의 목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더 골 때리는 게 있는데.”


다니엘은 총구 끝으로 공간의 한쪽 구석을 가리켰다. 거기에는 다른 구조물의 수십 배는 되어보이는 커다란 육각형 구조물이, 뿌연 섬유질에 덮힌 채 자리하고 있었다.


“세상에.”

“좆됐네.”

“씨발.”

[왜.]


채널 너머 민현의 목소리가 다급하게 울렸다.


[뭐야?]

“왕댑니다.”


다니엘이 대답했다.


“사람 하나 드러누울 만큼 큰 구조물이 있네요. 웅크리면 저도 들어가질 정도 크깁니다.”

[왕대가 있다는 말은.]

“여왕벌도 있다는 말이겠지요.”


다니엘은 피식 웃었다. 그러나 그 웃음은 끝이 짧았다.


“좆됐네요.”

“그러니까.”






+. Ruhemann's Purple 트리비아 12.

11분서원들의 주종 및 주량, 주사.

성우 : 소주 취향. 안주빨 안세우고 찰지게 술만 먹는 타입입니다. 주량은 소주 두 병 정도. 사회생활 짬밥이 길어서 음주가무에 능합니다. 술버릇은 아무나 붙잡고 웃기지도 않은 아재 개그를 끝도 없이 치는 것. 주로 피해자는 우진.

다니엘 : swat 시절 별명이 싱크대(붓는 대로 들어간다는 의미). 주종 주량 안 가림. 다니엘보다 오래 남은 사람이 없어서 정확한 주량을 아는 사람이 없습니다. 술 취하면 구석에 처박혀서 아주 곱고 예쁘게 잠.

민현 : 오피셜 주량 소주 반 잔. 알콜이 한 모금만 들어가도 머리부터 발끝까지 새빨개져서 저러다 잘못될까봐 무서워서 도저히 술을 먹일 수가 없는 타입. 그 와중에 술 취하면 옆사람에게 웃으면서 엉겨 붙음. 애교의 극을 보여준다는 증언이 있습니다.

우진 : 그나마 이 분서에서 다니엘과 대작이 가능하다면 우진 정도. 물론 싱크대까진 아니고, 평균 주량은 소주 다섯 병 정도. 주종 안 가리고 잘 마시지만 폭탄주는 사절. 폭발물이라면 지긋지긋하다는 게 이유입니다. 술버릇은 같은 말 무한 리피트.



뭘했다고 70편이냐... 읽어주시는 분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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