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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성][녤윙] Ruhemann's Purple 69

13. Burn It Up 2

회의를 마치고 사무실로 돌아온 세 사람의 표정은 별로 좋지 않았다. 성우는 파일철을 책상 위에 내동댕이치듯 내려놓고 바깥으로 나갔고 우진은 자리에 앉자마자 이어폰을 꼈다. 기분 별로 안 좋으니 말 시키지 말라는 무언의 사인이었다. 언제나처럼 다니엘만 엉덩이를 한껏 뒤로 뺀 채 책상에 턱을 대고 엎드려 있었다.


민현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다니엘의 어깨를 툭툭 두드리고는 앞장서서 밖으로 나갔다. 다니엘은 느릿느릿 그 뒤를 따라 밖으로 나왔다.


“회의는, 잘 했어?”

“회의야 뭐 늘 잘하지요. 결과가 개판이라서 그렇지.”

“어쩌기로 했는데.”

“뭘 어째요. 까라믄 까야지. 도리 있습니까.”


다니엘은 주머니에 손을 찌른 채 어깨를 으쓱했다.


“우리 분서가 사고를 워낙 쳐서 그렇지 실적은 나쁘지 않은 편이잖아. 그래도 역시 무리인 거 맞는 거지?”

“부지가요, 자그마치 600평이에요, 600평. 농구장 네 개 넓이라고요.”


다니엘은 헛웃음을 터뜨렸다.


“스캔된 개체만 다섯 긴데, 막상 가 보믄 뭐가 더 있을지도 모르고. 오늘 박 주사는 다 때려치우고 본청에 백린탄이나 날리러 갈 거라던데.”


민현은 가만히 고개를 저었다. 대충 우진이 어떤 표정으로 어떻게 말했을지, 짐작이 갔다.


“좀 이상한 오더인 거 같긴 했어. 심지어는 박 서기도 그렇게 말하던데. 찍힌 거냐고,”

“말이라고요.”


다니엘은 피식 웃었다.


“시키는 대로 안했다고 밟는 거지요. 뭐 한 두 번 당하는 거는 아닌데, 이런 일은 당할 때마다 기분이 더러워지니까, 그게 안 좋고.”

“...”

“그래도 뭐 도리 있습니까. 못하라고 던져주는 일이믄, 더 잘해야지. 그게 엿 제대로 먹이는 거지요.”

“강 사무관.”


민현은 잠시 입을 다물었다가 다니엘을 불렀다.


“너 당직 나가기 전에 나하고 데이트 좀 하자.”

“선배.”


민현을 바라보는 다니엘의 표정이 굳어졌다.


“저 괜찮아요.”

“괜찮은지 안 괜찮은지 그걸 네가 어떻게 알아.”

“내 일인데 내가 알지, 그라믄 누가 아는데요.”

“당연히 네가 모르지. 네 일이니까.”


민현은 딱 잘라 그렇게 말했다.


“사람이 하루 평균에 몇 번이나 몇 번이나 거짓말을 한댔지?”

“200번요.”

“그 중에 상당수가 자기 자신한테 하는 거짓말이지.”


민현은 팔짱을 낀 채 천천히 벽에 기댔다.


“분서장한테 얘기 다 들었어. 너 손 떨었다며.”

“...”


다니엘은 눈에 띄게 미간을 찌푸리며 사무실 쪽을 돌아보았다.


“사람 붙잡고 별 소리를 다 했네요.”

“야, 그렇게 말할 일이냐? 이게 웃으면서 말하니까 진짜 웃자고 하는 말인 줄 아네.”


민현의 말투가 강경해졌다. 그는 굳어진 눈으로 다니엘을 바라보았다.


“총 만지는 사람이 손 떨면, 그거 어쩌자는 거야? 좋은 말로 할 때 상담치료 받자. 너 그 패닉 어택 우습게 보면 안 돼. 큰일 나는 수가 있어.”

“...”

“너 혼자 같으면 괜찮아. 근데 이젠 그렇지도 않잖아.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지훈이 어떡할 거야.”


다니엘은 엷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그래서 괜찮다는 건데요.”

“뭐?”

“지훈이 금마가, 보기는 이쁘장한데, 제법 빡세요. 저 어제 혼 엄청 났잖아요.”

“...”

“무릎 꿇고 빌었는데. 잘못했다고.”

“...”


무어라 말을 하려다 말고 민현은 피식 웃었다. 그는 혀를 끌끌 차며 한참이나 다니엘을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그렇게 이뻐 죽겠냐.”

“예.”

“미치겠다, 진짜.”


민현은 고개를 내저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 이상의 참견은 그냥 잔소리가 될 것 같았다.


“콩깍지는 좀 떼고 다녀라. 넘어진다.”






“다들 알겠지만.”


모두가 자리에 앉자, 성우가 공식적으로 주말 당직 및 집행진입 스케줄을 발표했다.


“이번 토요일에, 11분서 당직이다.”


순간 거의 모든 사람의 표정이 찌푸려졌다. 민현은 한숨을 내쉬었고, 다니엘은 시큰둥한 표정으로 턱을 괴었다. 우진은 짜증스레 혀를 찼고 지훈 또한 불안한 표정으로 눈을 굴리며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살폈다. 그런 분서원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살펴보며, 성우는 씁쓸하게 웃었다.


“집행방역이 한 건 잡혔는데, 빡세다. 서울 근교 폐공장이고, 부지가 대략 600평이 조금 안 된다. 다른 분서에서 인력지원도 없을 예정이고,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우리끼리 다 해야 된다.”

“...”


순간 사무실 안에는 더없이 시큰둥한 침묵이 흘렀다. 성우는 고개를 내저으며 그런 분서원들의 얼굴을 하나씩 쳐다보았다.


“강다니엘 사무관.”

“예.”

“아까 샷건 얘기 했는데, 아주 일리 없는 말 아니다.”


성우는 손에 든 펜으로 폐공장의 도면을 툭툭 두드렸다.


“일단 폐공장이 돼버리면 건물의 고도 자체가 일반 가정집하고는 다르고, 내부 구조 또한 개방형일 가능성이 매우 높아. 그런 데서 뭔가를 하려면 우리도 그에 맞는 준비를 해야 되겠지. 장비 체크하고, 효율적인 동선 좀 짜봐.”

“알겠습니다.”

“그리고 박우진 주사.”

“예.”

“속 뒤집어지는 건 알겠는데, 본청에 백린탄은 좀 이따가 날리고.”


성우는 미소를 지었다.


“건평만 600평이면, 집행 후 혼자 방역하는 데 필요 이상으로 시간 많이 걸릴 수가 있어. 네이팜탄 말고 좀 빨리 진행할 수 있는 방법 같은 거 생각해 봐.”

“생각해 놓은 방법은 있습니다. 좀 과격해서 그렇지.”

“너무 과격하면 또 시말서야. 알지?”

“어차피 맨날 쓰는 시말선데 한 장 더 쓰는 것도 나쁘잖지요.”


그러나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우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성우는 그런 그에게 두 번 세 번 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아 그리고, 황 선생.”


성우는 민현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주말이라서, 아마 스캔 데이터를 우리 분서 내에서 봐야 될 거야. 황 선생이 수고 좀 해 줘.”

“알았어. 그건 내가 할게.”

“박 서기는 황 선생 잘 좀 도와주고.”

“네.”


지훈은 상기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11분서에 들어온 후 이런 본격적인 회의 분위기는 처음이어서 순간 자신이 굉장히 중요한 일에 끼어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뭐, 굳이 말 안 해도 알 거라고 생각한다. 본청에서 인력 충분한 다른 분서들 놔두고 우리한테 이 건 배당한 이유가 뭔지.”


성우는 엷은 미소를 띤 채 지훈부터 우진까지 모여 앉은 사람들을 쭉 한 번 훑어보았다.


“원래 윗전에서 주시는 엿은 북향사배하고 받자와서 잘 처먹고 찰지게 똥싸드리는 게 도리다. 알지?”

“이왕이믄 엿 말고 다른 맛있는 거를 좀 주믄 좋겠지만.”

“어디 그럴 놈들입니까. 모르지도 않으면서. 맛있는 거 생기믄 저거 처먹기 바쁘지. 그러니까 백린탄 날리러 가야 된다니까.”

“언제 날 잡히믄 불러라.”

“진짜요. 부르라믄 진짜 부릅니다.”


우진은 피식 웃었다.


“농담 아니고 작년에 반납 안한 백린탄 한 서너 발 저기 로커 안에 있습니다. 잘 타는가 확인이나 한 번 해 볼까요.”






+. Ruhemann's Purple 트리비아 11.

11분서 흡연자들의 담배 취향

성우 : 원래 피우던 것은 마일드세븐이었으나 메비우스로 이름 바뀌고 나서는 팔리아멘트.

다니엘 : 담배가 다 담배지 별 거 있냐는 주의. 집히는 대로 피우는 스타일입니다. 그래도 주종은 던힐 라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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