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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성][녤윙] Ruhemann's Purple 65

12. 살인자의 기억법 4

순간 축자 그대로 눈앞이 캄캄해졌다.


차에서 내리기 직전 민현은 분명히 그런 말을 했었다. 최악의 경우 다니엘이 뭔가 ‘엉뚱한 짓’을 했을 수도 있고, 집에 들어와 있지 않을 수도 있다고. 그렇더라도 너무 당황하지 말고 우선 자신에게 전화하라고. 지훈은 떨리는 손으로 핸드폰을 꺼내 민현의 전화번호를 눌렀다.


전화를 기다리기라도 하고 있었는지, 민현은 전화벨이 한 번 채 다 울리기도 전에 잡아채듯 전화를 받았다.


“선생님.”


지훈은 숨넘어가는 목소리로 민현을 불렀다.


“지금 집인데요. 형이 집에 없어요. 안 들어온 것 같아요.”


핸드폰 너머 민현이 한숨을 쉬는 소리가 들렸다.


[뭐 짚히는 거 없니? 아주 사소한 거라도.]

“...”


지훈은 필사적으로 지난 며칠간의 기억을 더듬었다. 그러나 그 며칠간의 다니엘 또한 예전과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단 한 번, 그 곳에 갔을 때를 제외한다면.


“거기, 갔었어요.”


지훈은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무슨 빌라였는데, 제보한 사람 말만 믿고 집행하러 갔는데 아무 것도 없어서 거기 사는 사람들이 죽고 다치고 했다는...”

[XX 맨션 말이니?]

“그런가는 모르겠는데, 무슨 건물 있던 자리 같기는 했어요.”

[미치겠네.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거길 간 거야.]


민현의 음성이 다급해졌다.


[거기서 무슨 얘기 했어? 대충이라도 기억나니?]

“그냥 그 맨션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랑.”

[또?]

“우리가 사는 세상은 이런 데라고.”

[...]


민현은 침묵했다. 그 침묵이 너무나도 불길해 핸드폰을 붙잡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 도대체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지훈아, 지금부터 하는 이야기는, 절대로 너를 탓하거나 네 잘못이라는 조로 하는 이야기가 아니야. 알았지?]

“네.”


지훈은 저도 모르게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집행관들이 하는 일은, 감정 이입이 돼버리는 순간 세상에서 제일 끔찍한 일이 돼. 무슨 말인지 알아?]

“네. 대충은요.”

[네게 좋지 않게 들릴 수 있는 말이라는 건 알아. 그렇지만 일단 들어봐. 집행관의 입장에서는, 변이개체를 대할 때 그냥 ‘변이개체’로 대해야 그걸 그나마 견딜 수가 있어. ‘과거에 사람이었던’ 존재로 대하는 순간 자기는 그냥 살인자가 돼버리는 거니까.]


민현의 그 말은 지훈의 기억 속에 감감히 걸려 있던 순간 하나를 꿰뚫고 지나갔다.


“저기.”


지훈은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지난번에 형 다쳐서 병원에서 자고 온 날요.”

[응.]

“형이 그런 말을 했었어요. 치료제 같은 거 개발 안 됐으면 좋겠다고. 그러면 그 순간 자기가 죽인 게 전부 사람이 될 거니까.”

[...]

“무슨 그런 말을 하냐고 하긴 했는데.”

[...]


민현은 다시 침묵했다. 지훈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가슴이 답답해왔다. 서 있는 것이 힘이 들어서, 어디에든 주저앉고 싶었다.


[지금까지는, 어떻게, 변이개체를 변이개체로만 보는 게 그럭저럭 가능했어. 그러니까 지금까지 큰 탈 없이 버틴 거겠지.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그게 불가능해져 버린 거야. 아니, 좀 더 정확히는, 억지로 모른척하고 있던 것이 수면 위로 떠올라버린 거지. 어떤 계기로 인해서.]

“그 계기가, 뭔데요?”

[너야.]

“...”

[정확히는, 네가 보는 앞에서 너희 가족들을 집행했다는 것. 그 사실.]


조용하고 차분한 말투로, 그러나 조금은 잔혹하리만큼 정확하게 민현은 그렇게 말했다.


[지금까지는 억지로 모른척해 왔는데, 이젠 그럴 수가 없게 되어버린 거지.]

“...”

[너는 그냥 봉소에서 살아남은 미전이자가 아니라 다니엘이 사랑하는 사람이니까. 그리고, 다니엘은 그런 너의 가족들을 죽인 셈이니까.]

“...”


뭐 본인이 그래 말은 안하는데, 또 니 앞에서 이런 말 해도 되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니 보는 앞에서 너거 집 집행한 거, 그것도... 보기만큼 그래 아무렇지는 않지는 않았을 거다.


언젠가 다니엘이 하프를 사살했던 날, 우진이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아무렇지 않지는 않은’ 정도가 아니었다. 그 사실은, 빼내지 못한 가시처럼 그 마음 한 구석에 박힌 채 곪아가고 있었던 거였다. 그리고 아무도 그 사실을 알지 못했다. 심지어 자신조차도.


“선생님.”


지훈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저 형이 어디 있는지 알 거 같아요.”






다니엘은 지훈의 집에 있었다.


아무도, 아무 것도 없는 그 빈 집에, 그을음과 잿더미만 가득한 그 집의 베란다 가드레일에 기대 선 채로, 그는 물끄러미 바깥을 내다보고 있었다. 그 언젠가 잠이 오지 않는 새벽, 밖으로 나갔다가 맞닥뜨렸던 그 뒷모습처럼.


“뭐해요, 여기서.”

“왔나.”


그 목소리는, 마치 지훈을 기다리기라도 했던 것처럼도 들렸다.


“여긴, 왜 왔어.”


지훈의 목소리는 희미하게 떨리고 있었다.


“뭐 볼 게 있다고.”

“니는 이런 데 살았구나.”


다니엘은 중얼거리듯 말했다. 그 말은 지훈의 물음에 대한 직접적인 대답은 아니었다.


“여서, 그냥 평범하게, 아침에 학교 가고, 밤 되믄 집에 오고, 누나하고 싸우고, 엄마한테 반찬투정도 하고, 아버지한테 용돈 달라 소리하다가 욕도 먹고, 그라면서, 아주 평범하게.”

“...”

“그 일 있기 전까지는.”

“형.”


불안했다. 올이 풀리는 소리, 뭔가가 구겨지는 소리, 뭔가가 부서져 깨져 나가는 소리가 자신의 귀에까지도 들리는 것 같았다.


자신이 괜찮으니까, 그도 괜찮은 줄 알았다. 아니, 자신이 괜찮지 않아도 그는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그는 닳아가고 있었다. 조금씩, 아주 조금씩 그는 어긋나고 있었다. 뒤틀리고 어긋나, 이제는 더 이상 괜찮은 척 할 수가 없게 되어버리고 말았다.


돌아보는 눈이 텅 비어 있었다.


“그런 얼굴 하지 마요.”


지훈은 입술을 깨물었다.


“무슨 큰 잘못이라도 한 것 같잖아.”

“지훈아.”

“하지 마.”


지훈은 떼를 쓰듯 말했다.


“그런 거, 하지 마.”

“...”

“이상해. 그런 거 하지 마.”


말없이 자신을 바라보는 다니엘을 향해 지훈은 고개를 저었다. 있는 힘껏.


“형이, 형까지 그러면.”

“...”

“나는, 어떡하라고.”


이것은 위로도 무엇도 아니었다. 다정한 말 같은 건 더더욱 아니었다. 오히려 원망이나 질책에 가까운 말이었다. 그러나 어째서 그런지, 지훈의 머릿속에서는 그런 말들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이게 뭐야.”

“...”

“뭐가... 이래.”


화가 나서, 속이 상해서, 지훈은 다니엘의 팔을 한 대 때렸다. 휘청, 하고 처음부터 별로 버틸 생각이 없었던 다니엘의 몸은 뒤로 떠밀렸다. 그리고 다음 순간, 그는 주저앉듯 지훈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지훈아.”


한참만에야 입을 여는 그 목소리는 엉망으로 갈라지고 있었다.


“내가 잘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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