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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성][녤윙] Ruhemann's Purple 64

12. 살인자의 기억법 3

도대체가, 실험 데이터 수치가 적혀있는 파일들의 서식이 이렇게 제각각이래서야 어떻게 수치를 비교하고 대조할 수가 있겠나 하고 민현은 생각했다. 들여다보고 있던 엑셀 파일을 신경질적으로 꺼버린 후, 눈 앞이 아른거려 그는 잠시 손등으로 눈자위를 문질렀다.


그 때 책상위에 놓아둔 핸드폰에서 진동음이 울렸다. 성우였다. 시간을 보니 7시가 조금 지난 시간이었다. 지금쯤이면 집행이 끝났기에는 조금 이른 시간이긴 한데, 그래서일까, 어쩐지 조금 불길한 생각이 들었다.


[어, 황 선생. 난데.]


전화를 받자마자 성우는 다급하게, 대뜸 그렇게 말했다.


“집행 끝났어?”


민현은 대뜸 그렇게 물었다.


“끝났으면 들어와서 말하면 되지 웬 전화야?”

[사무실 안이지?]

“그렇지 뭐.”

[나와서 전화 좀 받자.]

“...”


민현의 미간이 천천히 찌푸려졌다. 그러나 그는 곧 성우의 말을 알아들었다. 그는 소리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무슨 일이야.”


민현은 다급하게 물었다. 뒷덜미가 뻣뻣하게 굳어지는 느낌이 났다. 분명, 무언가 좋지 못한 일이 생겼다는 절실한 예감이 스멀스멀 신경을 통해 온 몸으로 스며들었다.


[부탁이 좀 있어.]


성우는 차분하게 대답했다.


[오늘 일 많아?]

“뭐 그럭저럭? 왜?”

[많이 바쁘지 않으면.]


담배라도 피워 무는지 라이터를 철컥거리는 소리가 핸드폰 너머 감감하게 들려왔다.


[박 서기 집에 좀 데려다 줘.]

“박 서기? 왜?”


순간 민현은 흠칫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강 사무관 또 무슨 일 있어?”

[다치거나 뭐 그런 건 아닌데.]


성우의 목소리가 일순 착잡하게 가라앉았다.


[패닉 왔나 봐.]

“...”


민현은 저도 모르게 눈을 감아버렸다. 꾹 다문 입술에서 낮은 신음소리가 새어나왔다.


“증상은 어떤데. 과호흡 같은 거 혹시 왔어?”

[그 정도는 아니긴 했는데.]


성우가 가만히 한숨을 내쉬는 소리가 어렴풋이 들려왔다.


[오늘 간 집은 그냥 아피스 변이개체 3기 정도였는데 거기다 대고 난사를 해대길래 무슨 일인가 싶어서 가봤더니, 총이고 인이어고 다 집어 던지고는.]

“...”

[인이어야 하울링 와서 그럴 수도 있는데, 총은.]


민현의 눈동자가 불안스레 흔들렸다. 그는 짜증스레 이마를 짚은 채로 복도를 한동안 서성거렸다.


“갑자기 왜. 무슨 일이라도 있었어?”

[글쎄, 내가 보기엔 아무 일도 없었지만. 모르지. 그 녀석에게는 뭔가 건드려지는 상황이 있었는지도. 요 며칠 박 서기 최면 문제 때문에 그 녀석도 속 많이 끓였을 테니까.]

“그래서, 어쨌는데.”

[총 뺏고 일단 집에 보냈어.]


성우의 목소리는 무거웠다.


[집행 중에 식은땀 나는 정도의 패닉은 나도 가끔 날 때가 있긴 한데, 이 녀석 오늘 좀 이상했어. 손도 좀 떠는 것 같았고.]

“...”


민현은 기어이 한숨을 내쉬었다. 이 일을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두 번씩은 겪는 일이긴 했지만, 그것이 막상 다니엘이 되고 보니 영 마음이 편치 않았다. 민현은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려 사무실쪽을 흘끔 돌아보았다.


“알았어. 박 서기는 내가 데려다 줄게.”

[저.]


성우는 한참을 머뭇거리다 조심스레 물어왔다.


[박 서기한테 얘기를, 하는 게 맞을까?]

“해야지.”


민현은 단호하게 대답했다.


“단순히 한 집 사는 사이라도 알아야 될 판인데, 둘이 그런 사이도 아니잖아. 말해줘야지.”






“저.”


사무실을 나와 차에 타고, 한참을 가는 동안 지훈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좁은 도로를 한참이나 지나 자동차 전용 도로를 타고, 한참이나 앞 차의 페이스에 따라 도로를 달리게 되고 부터도 몇 분이나 지나서야 그는 조용히 물어왔다.


“무슨 일, 있는 거죠.”

“왜?”

“그냥요.”


지훈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대답했다.


“아까 전화도 나가서 받으시고.”

“박 서기는 눈치가 너무 빨라.”

“제가 눈치가 빠른 게 아니라 다들 거짓말들을 잘 못하시는 건데요.”


지훈은 피식 웃었다. 언젠가 비슷한 이야기를 다니엘에게도 들은 기억이 나서였다.


“너무 그렇게 긴장하지 마. 별 일 아니라면 별 일 아닌 거니까.”


별 일 아니라면 별 일 아니라는 말은, 별 일이라면 별 일일 수도 있다는 뜻일까. 문득 그렇게 말꼬리를 잡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다니엘이, 오늘 집행 중에 패닉이 좀 온 모양이야.”

“패닉요?”

“그래. 패닉. 공황발작.”


민현은 잠시 입을 다물었다. 차 안의 공기는 더없이 착잡하게 가라앉았다.


“공황발작이 뭔지는, 좀 아니?”

“정확히는 잘 모르고요.”


지훈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예전에 시설에 있을 때, 공황발작의 위험성이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한 번인지 있었어요.”

“그래. 그러면 좀 이야기가 쉽겠네.”


민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요즘 애들 말로 멘탈붕괴라고 하나, 뭐 그 비슷한 상태에 빠지는 걸 공황이라고 해. 그렇게 가벼운 게 아니라는 게 문제지만.”

“왜요?”


대뜸 그렇게 되물어놓고 지훈은 허둥지둥 고개를 저었다.


“아, 아니, 그러니까 제 말은.”

“다니엘이 왜 패닉이냐, 그거지?”


민현은 선선하게 지훈이 미처 묻지도 않은 말을 대신 되물어 주었다.


“다니엘이 하는 일이 뭔지는, 알지?”

“네.”

“일주일에 5일, 당직이 걸리는 날은 6일, 하루에 적으면 여섯 명, 많으면 열두 명에서 열세 명, 본래는 사람이었을 생명들을 그 손으로 직접 사살하고 있지. 그 짓을, 지금 수년 째 하고 있고.”

“...”

“다니엘의 상태는 일종의 시한폭탄이라고 보면 돼. 워낙에 튼튼한 녀석이라, 그 기폭장치에 불이 붙지 않았을 뿐이야. 그 말인 즉.”


민현은 잠시 입을 다물었다.


“뭔가가 건드리기만 하면 언제든 뻥 하고 터질 수 있다는 말이지. 풍선처럼.”

“...”


민현의 말은 담담했다. 그러나 그가 지금 하고 있는 이야기는 다니엘의 이야기이기도 했지만 성우의 이야기이기도 했다. 언젠가 그는, ‘겁이 많아서’ 성우의 마음을 받아줄 수가 없다고 했다. 그가 말한 그 두려운 상황 중에는, 이런 것들도 포함되어 있는 것일까.


“제가 뭘 하면 되나요?”

“네가 딱히 할 게 없어. 너 뿐만 아니라 누구라도 그렇지만.”


민현의 눈가에 안타깝게 여기는 듯한 표정이 어리는 것을, 지훈은 분명히 보았다.


“그냥 진정하게 도와줘. 숨을 천천히, 깊게 쉬게 해주고. 그리고 혼자 두지 마. 심리 상태가 불안정할 테니까.”

“정말 그거면 되나요?”

“그게 얼마나 중요한 건데.”


민현은 웃었다.


“그거 해 주는 사람이 곁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다니엘은 복 받은 거야.”






지훈은 떨리는 손으로 도어락의 비밀번호를 누르고 문을 열었다. 집 안은 조용했다. 착 가라앉은 집안의 공기는 무겁다 못해 질식할 것 같았다.


“형.”


용기를 내어 다니엘을 불렀다. 그러나 집 안에서는 아무 대답이 없었다.


“형, 저기.”


다시 한 번 입을 열어 불렀다. 그러나 이번에도, 집 안 어디에서도 대답이 들려오지 않았다.


지훈은 집 안으로 들어섰다. 하나하나, 집 안의 모든 방문과 욕실, 베란다까지를 돌아보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세탁기와 벽 사이에 난 틈새까지도 빼먹지 않고 들여다보았다. 그러나 거기에는 아무도 없었다.


“...”


지훈은 저도 모르게 그 자리에 발을 멈추고 서 버렸다.


다니엘은 집에 돌아와 있지 않았다.






+. 이미지컷 세 번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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