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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성][녤윙] Ruhemann's Purple 62

12. 살인자의 기억법 1

보통 집행이 있는 날은 집행 전에, 좀 과하다 싶을 만큼 점심을 먹고 움직이는 것이 통례였다. 아무리 이 바닥에서 잔뼈가 굵은 베테랑 집행관이라고 해도, 목숨을 살상해 놓고 밥이 넘어가지는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었다. 집행과 집행 사이에 시간이 뜨는 경우가 애매해 버리는 데에는, 그런 탓도 상당 부분 있었다.


“혼자 좀 놀아라.”


첫 집행을 마치고 내려오며, 성우가 불쑥 그렇게 말했다.


“나 오늘 본청 좀 갔다 와야 돼.”

“왜요.”


별로 좋지 않은 예감에 다니엘은 흘끗 성우를 바라보았다.


“저번에 그 일, 혹시 아직 안 끝난 거 아닙니까.”


대번 마음에 걸린 것이 지난 번 지훈의 최면 이야기였다. 도대체 뭘 어떻게 했는지는 모르지만 성우가 부이사관과 담판을 지은 이후 그 일은 언제 그런 논의가 오갔냐는 듯 사라졌다. 그러나 과연 그 일이 그렇게 쉽고 수나롭게 끝날 만한 것이었는지, 다니엘은 아직도 의심스럽던 참이었다.


“아냐.”


그러나 성우는 딱 잘라 다니엘의 말을 부정했다. 성우를 바라보는 다니엘의 눈매가 힐끗 가늘어졌다.


“근데 집행 중에 본청은 뭔 일로 가는데요.”

“그걸 내가 아냐. 오라니까 가는 거지.”

“아니 그러니까. 뭐 먹고 살 일 났다고 집행 나간 집행관을 오라가라 하는데요.”

“당장 오라는 말은 아니긴 했는데.”


성우는 담배 한 대를 꺼내 물며 내뱉듯이 말했다.


“퇴근하고 본청 가려면 재수 없잖아.”

“그거는 그렇다.”


다니엘은 웃었다.


“알았어요. 먼저 가 있을 거니까, 나중에 합류하지요.”

“그래.”


성우는 손을 들어보이고는 자신의 차 쪽으로 걸어갔다.


“사고치지 말고 잘 놀아라.”






느닷없이 커피 한 잔 생각이 났다. 카페를 찾으러 다니고 싶은 마음도 별로 들지 않아, 눈에 띄는 편의점에 들어가 담배 한 갑을 사고 냉장고에 들어있는 아메리카노 한 병을 샀다.


그 동네는 어딘가 낯이 익었다. 사람 사는 동네야 어디나 비슷비슷하게 생기기 마련이라지만, 이 동네는 유독 그랬다. 다니엘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가만 있자.”


모퉁이의 편의점, 그 옆의 빵집. 좁은 2차선 도로 건너 맞은편에는 허름한 과일 가게. 부동산과 미용실이 각각 한 군데씩. 핸드폰 파는 가게가 그다지 멀지 않은 거리를 두고 두 군데. 그 중 한 가게의 유리창에 붙어있는 사장님이 미쳤어요 운운 하는 LED 사인까지도 분명 어디선가 본 것이었다.


“여 분명히 전에 와 본 적이 있는데.”


다니엘은 핸드폰을 열어 최근의 집행 스케줄을 뒤졌다. 그러나 이 근처에 온 일은 없었다. 그 사실을 확인한 순간 더욱 기분이 나빠졌다. 한 적도 없는 일이 기억에 남아 있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별로 좋은 징조가 아니었다.


“아직 마흔 살도 안 됐는데 벌써 치매가 오나.”


투덜거리며 고개를 돌리는 다니엘의 눈에, 전신주에 붙어 있는 전단지 하나가 눈에 띄었다. 잃어버린 강아지를 찾는다는 내용의, 아마도 가정용 프린터로 인쇄해 복사한 것 같은 전단이었다. 다니엘은 잠시 입을 다물고 그 전단 속의 포메라니안 종 강아지의 사진을 가만히 쳐다보았다. 그 아래 붙어 있는 전화번호는 두어 장이 뜯겨나가 있었다.


그러니까, 그 날도.


“...”


다니엘은 천천히 고개를 돌려, 그 주변을 한 번 둘러보았다.


그 동네는, 지훈의 집 근처였다.






다니엘이 이 근처에 온 것은 두 번 다 밤시간이었다. 그나마 한 번은 밤도 아닌 새벽이었다. 의외로 공간이란, 낮과 밤이 다른 형태를 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얼른 그 인상이 잡혀들지 않은 것은, 아마도 그래서가 아니었을까.


지훈의 집을 집행해 버린 것은 공문도 치기 전, 전적으로 자신의 재량에 의해서였다. 그러니 주소가 남아 있지 않은 것도 당연했다. 다니엘은 기억을 더듬어 지훈이 원래 살았던 아파트 단지를 찾아갔다.


입구에 서니 그 날의 일이 뚜렷이 떠올랐다. 심지어 그 집이 몇 동 몇 호였는가까지도. 단지 안의 풍경은 지극히 평범해, 오히려 위화감이 들었다. 저기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있는 사람은, 저 놀이터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은, 택배 상자를 들고 단지 안을 돌아다니고 있는 택배 기사는 이 단지 안의 한 집에서 그런 끔찍한 일이 벌어졌다는 것을 알고는 있을까.


엘리베이터를 타고 9층으로 올라갔다. 혹시나, 이미 다른 사람이 들어와 살고 있다면, 그들에게는 또 그들의 삶이 있을 것이므로 미련없이 되돌아올 생각이었다. 그러나 불행히도 그런 것 같지 않았다.


대충 잡아당기자 잠가두지도 않은 문은 아무렇게나 열렸다.


내부는 방역한 직후 그대로였다. 시커멓게 탄 내벽과 바닥, 천정까지 전부. 내력벽만을 남겨두고 모든 것이 다 타버린 그 집안에는 아무도, 아무 것도 없었다. 이렇게까지 깨끗하게 뭔가가 사라져 버릴 수도 있구나 싶을 만큼. 꽤나 긴 시간이 지났는데도 집안 곳곳에는 아직도 방역할 때의 매캐한 매연과 그을음이 남아 있었다. 벽에 묻은 그을음에 손을 대 보았다. 손 끝에 시커먼 분진이 묻어났다.


처음 방아쇠를 당긴 것이, 베란다 쪽, 그 다음은 천정. 마지막으로 제 방에서 거실로 날아나오던 마지막 개체까지. 더듬어 생각해 보면 이 집에 있던 변이개체들은 아피스 변이종이었다. 아마도 자신들에게 무슨 일이 벌어졌을지도 몰랐을 그들은, 그렇게 순식간에 숨이 끊어졌다. 지훈의 눈 앞에서, 자신의 손으로.


순간 가슴이 답답해졌다.


다니엘은 나직한 신음소리를 내며 벽에 등을 기댔다. 순식간에 이마에 식은땀이 맺혔다. 입 속이 바싹 말라왔다. 심장이 필요 이상으로 두근거리며 뛰었다. 크게 놀라기라도 한 사람처럼.


그것이, 그의 업(業)이었다.


“누구요?”


그 때 문 쪽에서 인기척이 났다. 다니엘은 미간을 찌푸리며 입구를 돌아보았다. 입구에 서 있는 것은 체구가 작은 노인이었다. 입고 있는 옷을 보니 아파트 경비원인 것 같았다.


“아.”


다니엘은 나오지 않는 웃음을 억지로 지었다.


“여기가 저희 아버지 친구 분 댁인데.”

“...”

“서울 온 김에 인사나 드리고 갈라고 와 봤더니.”

“소식 못 들었나봐.”


경비는 혀를 끌끌 차며 손을 내저었다.


“얼마 전에 집에 불이 났어.”

“불이요.”

“도대체 집 안에서 무슨 짓을 하다가 그런 큰 불이 난 건지, 터럭 하나 안 남고 홀랑 다 타버렸잖아. 내 살다 살다 이렇게 아무 것도 안 남고 홀랑 타버린 거는 또 처음 봤네.”

“...”


다니엘은 어색하게 웃었다. 당연한 일이다. 실화(失火)가 아닌 방화(放火)이므로. 아니, 방화라기보다는 소각 쪽에 가깝긴 하지만.


“그럼, 여기 살던 사람들은.”

“다 죽었지.”


경비는 뭘 당연한 걸 물어보느냐는 듯 다니엘을 쳐다보았다.


“집구석이 이 꼴이 났는데 사람이 어떻게 살아. 듣자 하니 시체도 수습 못할 정도로 타버렸다던데.”

“...”

“아들래미 하나, 고등학생 정도 되는 애 하나만 그 때 때마침 집에 없었다나 해서 겨우 살았고. 다른 식구들은 다 죽었어.”

“...”


모르지도 않는, 심지어는 자신이 직접 저지른 일을 남의 입에서 듣는 것은 기분이 묘했다. 연신 입 속이 바싹 말라 와, 다니엘은 몇 번이고 마른침을 삼켰다.


“괜찮아요?”


경비는 걱정스레 다니엘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안색이 안 좋아.”

“아닙니다.”


다니엘은 천천히 고개를 내저었다.


“좀 놀래서요.”

“그럴 만도 하지.”


경비는 텅 비어버린 집 안을 둘러보며 혀를 끌끌 찼다.


“이래서, 사람 인생 진짜 한 치 앞을 모르는 거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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