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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성][녤윙] Ruhemann's Purple 61

11.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다 6

그 말은 지훈이 생각한 것 이상으로 무거웠다. 입 속을 달싹이는 말들 중 반의 반도 뱉어내지 못한 채, 지훈은 물끄러미 담배를 피우는 다니엘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다니엘과 자신은 대략 열 살 정도의 차이가 났다. 그러나 그 10년의 세월동안, 다니엘은 자신이 상상도 하지 못할 일을 겪으며 여기까지 왔을 터였다. 그것은 단순히 열 살의 나이 차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종류의 어떤 것이었다.


“혹시.”


지훈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물었다.


“형도, 그 맨션에 집행하러 갔었어요?”

“갈 뻔 했다.”


다니엘은 흘끗 지훈을 돌아보며 피식 웃었다.


“몇 년 전 일이라서, 그 때는 분서 배치가 지금하고 틀렸다. 내 있던 분서도 그 집행에 차출됐었다. 당연히 나도 가는 거였고.”

“...”

“그런데 그 전날, 집행 나갔다가 다쳤다.”

“어디를요.”

“손.”


다니엘은 오른손을 슬쩍 훑어보았다.


“그 때는 열 스캔이 없었다. 그래서 순전히 감만 가지고 변이체를 상대해야 됐는데, 뒤에서 덮쳐오는 걸 피한다고 바닥에 손 짚은 게 삐끗해서. 엄지하고 그 아래쪽에 미세골절이 좀 나가지고 반 기브스 비슷하게 했었다.”

“많이 다쳤었나 보네.”

“그냥 시간 지나면 낫는 거였다.”


다니엘은 어깨를 가볍게 으쓱거렸다.


“덕분에 한 2주 잘 놀았다. 물론 태어나서 그 때까지 먹은 욕보다 그 2주간 먹은 욕이 더 많지만서도.”

“욕을 왜 해요. 다쳐서 쉬는 건데.”

“그거는 그런데, 니도 봐서 안다 아이가. 맨날 사람 모자라서 빌빌거리는 거. 그 와중에 2주나 처 논다고 하믄, 내라도 좋은 소리 안한다.”


그는 피식 웃었다.


“뭐 그래서, 자의 반 타의 반 나는 빠졌는데.”

“...”

“그 일이 그런 거였을 줄은.”

“...”

“그 다음날 사람들이 출근했는데, 하나같이 귀신이라도 본 얼굴이더라. 사람들이 하나같이 정신이 반쯤 나가서는, 얼굴에 핏기들도 하나도 없고. 반사적으로 집행이 뭔가 잘못됐다는 걸 알았는데, 차마 뭔 일이 있었는지 물어보지를 못하겠더라.”


다니엘은 다 타 들어간 담배를 바닥에 버리고는, 새 담배 한 대를 더 꺼내 물었다.


“그 날 무슨 일이 있었는가 하는 거는, 한참이나 지나고 나서 알았다.”

“...”

“그 때 같은 분서 있던 사람들은, 요새는 길에서 마주쳐도 인사도 안한다. 딱히 원수가 진 것도 아니고, 감정이 상한 것도 아닌데, 그냥 얼굴 쳐다보기만 해도 힘들어서.”


무슨 말이든 하고 싶었다. 그러나 무슨 말을 어떻게 꺼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그 언젠가 하프를 사살하고 돌아온 날, 늦은 새벽 베란다 가드레일에 쓰러지듯 기댄 채 바깥을 바라보고 있던 그의 뒷모습이 떠올랐다.


“이해해라.”


굳어진 지훈의 얼굴을 바라보던 다니엘은 피식 웃었다.


“내가 요새 나사가 좀 풀렸는가, 니 앞에서 별 소리를 다하고.”


그의 첫인상은 어땠던지를 문득 생각해 보았다. 이미 인간이 아니게 된 가족들에게 놀라 집을 뛰쳐나와 길거리를 헤매다니던 자신을 붙들어 세우던 그 순간부터, 이미 벌로 변이한 어머니에게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방아쇠를 당기던 그 순간까지. 펜을 집어던지고, 살인지라고 악다구니를 퍼부어도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고, 그러면 내가 너까지 죽게 놓아두었어야 하느냐고 되묻던 그 얼굴까지.


그러나 그런 모습 뒤에는, 한없이 혼자 지쳐가고 있는 또다른 뒷모습이 있었다.


“닻이니까.”

“뭐?”

“닻이라고.”


지훈은 대답했다.


“오늘 박 주사님이 안 나오셔서 내가 박 주사님 사유서랑 다 썼거든요.”

“그랬겠네.”


다니엘은 고개를 끄덕였다.


“욕봤겠다. 안 하던 일 한다고.”

“아냐, 황 선생님이 샘플이랑 다 찾아주시고 어떻게 쓰면 되는지도 다 가르쳐 주셔서 별로 고생은 안했어요.”


새삼 가슴에 사무쳤다. 몹시도 딱딱하고 사무적인 어구로 나열되어 있던, 찰과상, 타박상, 화상, 사살과 같은 단어들이.


“그래서, 본의 아니게, 봐버렸어요. 형 사유서도.”

“아.”


다니엘은 겸연쩍게 웃었다.


“뭐, 니도 대충은 안다 아이가. 내가 우리 분서에서 사고 제일 많이 치는 거.”

“대충은.”


지훈은 웃었다.


“근데 그걸 다 읽고 나니까, 그런 생각이 드는 거야. 결근해서 사유서를 쓴 게 이 정도면, 저번처럼 병원에서 하룻밤만 자고 다음날 결근 안한 거는 사유서로 남아있지도 않겠구나, 하고.”

“...”

“그 생각을 하고 나니까, 마음이 되게 무거웠어. 괜한 소리 했나 싶어서 괴롭기도 했고.”


사실이었다, 가뜩이나 힘든 사람에게 자신의 짐까지 억지로 떠넘긴 그 때의 기분은, 돌덩이 하나를 명치에 매단 듯 답답하고 무거웠다. 지금도 그 순간의 막막함이 뚜렷하게 떠올라왔다. 내가 도대체 무슨 짓을 해 버린 것인가 하는 회한까지도.


“근데 황 선생님이 그러셨어요. 배에 너무 많은 짐을 실으면 배가 가라앉는데, 그렇다고 닻이 없으면 어디 정박을 할 수 없게 된다고.”

“아.”


다니엘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닻이라고.”

“네.”

“그 양반은 다 좋은데, 같은 말을 참 그래 빙빙 돌려가, 어렵게 하는 거 좋아하는 버릇이 있다.”

“그럼 그 말은 어떻게 하는데.”


다니엘은 입에 담배를 문 채로 지훈을 돌아보았다.


“니하고 내하고 뭔 사이라대.”

“...”


새삼 얼굴이 발갛게 달아올라 지훈은 괜히 다른 곳을 쳐다보는 척 시선을 피했다.


“뭔 사이라대.”

“애인 사이.”

“그거믄 안 됐나?”

“...”


지훈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다니엘은 그런 지훈을 한참 동안 바라보다가, 고개를 돌리고 담배 연기를 길게 뱉어냈다.


“내는, 일부러 죽을라고 해 본 적은 없다. 그런데 억지로 살라고 아등바등해 본 적도 별로 없다. 니 만나기 전에는 그랬다.”

“...”

“그런데 요새는, 이라다가 잘못하믄 죽겠구나 싶으믄 별로 열심히 믿지도 안하는 하나님한테 빈다. 내 좀 살려줘 보라고.”


다니엘은 슬쩍 손을 뻗어 지훈의 뺨을 살짝 건드렸다.


“그거로 다 된 거 아이가.”

“그걸로 된 것 같으면, 형도 그런 말 하면 안 되는 거 아닌가.”

“뭐가.”

“나사 풀렸다느니, 별 소리를 다한다느니 그런 말.”


지훈은 고개를 들고 다니엘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애인 사이라며.”

“맞나.”


다니엘은 피식 웃었다.


“니는 참 번번이 내를 할 말 없게 만든다.”


그 말을 언제 들었던가를 떠올리다가, 문득 얼굴이 붉어졌다.


다니엘은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냈다. 어딘가에서 전화가 온 듯, 액정이 환하게 반짝이고 있었다. 그는 지훈에게서 반쯤 몸을 틀어 전화를 받았다.


“예.”


그는 잠시 입을 굳게 다물었다. 그의 표정으로만 봐서는 도대체 무슨 용건의 전화인지를 눈치 채기가 쉽지 않았다.


“아.”


그는 나직한 탄성을 뱉었다. 그리고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욕봤어요.”


그는 나직하게 대답했다.


“제가 형 많이 사랑하는 거 알지요.”


피식, 웃음이 터졌다 다니엘은 장난스레 핸드폰을 귀에서 떨어뜨렸다. 그 너머로 감감하게, 그딴 개소리 당장 집어치우라는 욕설이 들려왔다.


“예. 예. 내일 뵐게요. 분서장님 사랑합니다.”


또다시 욕설이 들려올 것이 무서웠던지 다니엘은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


“성우 형이다.”


다니엘은 딱 잘라 말했다.


“니 최면 안 해도 된다고.”






+. Ruhemann's Purple 트리비아 9.

11분서 서열정리

나이 : 민현 ≧ 성우(여기까지 동갑) > 다니엘(한 살 차이) > 우진(세 살 차이) > 지훈(여덟살 차이)

키 : 민현 > 다니엘 > 성우 > 우진 > 지훈

연봉 : 성우 > 다니엘(위험수당 제외 본봉은 민현보다 적습니다) > 민현 > 우진 > 지훈

근무시간 : 우진 > 성우 > 다니엘 > 민현 > 지훈

애교 : 민현 > 지훈 > 다니엘 ≧ 성우 >>>>> 우진

시니컬 : 우진 ≧ 다니엘 > 성우 >>>>>> 민현 > 지훈

실세 : 민현 > 성우 > 우진 > 지훈 > 다니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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